나도 그랬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면 좋겠다고 바랐다. 아이는 학원에 가기 싫어했다. 학원을 많이 다녀서가 아니다. 아이가 5학년이 될 때까지 내가 보낸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 전부였다. 저학년 때는 다니기 싫다던 미술학원을 4학년 2학기 때에야 가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다른 엄마들은 고학년이 되면 예체능 학원을 끊는다. 다른 공부하기도 바쁘니까. 아이는 4학년 2학기 때 방과 후 수업으로 플루트를 신청했다(고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도 잘 하지 않는다, 학원에 가야 하니까). 물론 지금까지도 배우고 있다.
아이는 영어, 수학, 국어 학원은 처음부터 거부했다. 영어는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포기가 안 됐다. 프랜차이즈 영어학원 중에 주 1회 집으로 방문하는 데가 있어서 그걸 했다(이마저도 이번 4월이 마지막이다). 아이도 그거까지는 마다하지 않았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니, 주변에 친구들과 몰려다닐 일이 없다. 집이랑 학교가 조금 떨어져 있어, 주말에도 동네에서 놀 친구가 없다(요즘엔 동네 친구가 있어도 못 논다고는 하더라, 학원 다니기 바빠서). 그런데도 아이는 조금 심심해하는 날이 있을 뿐, 별 문제 없이 견디며 산다(덕분에 우리 부부가 괴롭긴 하다, 주말에도 놀아줘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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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는다고 하면 주변에서 더 난리다. "학원에 안 가면 놀 친구가 없을 텐데...", "나중에 공부가 어려워지면 힘들 텐데..." 나도 아이에게 한 말이다. 그때마다 아이는 말했다. "그래도 학원은 싫어." 왜 그렇게 학원이 싫을까. 주변에 물으면 "친구들에게 학원 숙제가 너무 많아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아냐?"라고 말한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엄마들도 안다. 학원 숙제가 너무 많다는 걸. 그래도 해야 하는 거니까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 있냐"면서. 그런 엄마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애가 좋다는 것만 시켜주는,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엄마로 보일까?
아이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도 버거워했다. 5학년 들어 숙제가 더 많아지면서 5일 가던 피아노 학원을 3일로 줄였다. 아이는 '학원'에 가는 것만 싫다고 할 뿐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하니, 무턱대고 학원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나만 불안할 뿐이다. 언제까지 학원을 안 보내도 될까? '영포자', '수포자'가 되면 어쩌지? 매일 묻는다. 그렇다고 딱히 뭘 하지도 않으면서.
◇ 초등학생들의 한결같은 고민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
그러던 내가 봐서는 안 될 걸 봤다. 아이를 데리러 시댁에 가는 날. 저녁 7시쯤 됐을까. 아파트 단지 주변을 노란색 학원버스가 감싸다시피 했다. 대부분 영어학원, 수학학원 가는 차들이었다. 우리 아이 또래들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전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프린트물을 보고 있다. 뭔가를 외우는 아이들도 보였다. 그 장면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잊히지가 않는다. '우리 딸 학원 안 보내길 잘했네', 말이 절로 나왔다. 아니지, 학원에 안 간다고 지금까지 버틴 아이가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진짜 아무것도 안 하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학원은 안 가지만, 학습지는 한다. 학원에 보내지 않아 불안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수학 연산 학습지도 하고, 한자 학습지도 한다. 서열을 매기는 한자 급수, 피아노 급수 시험 같은 건 보지 않는다. 아이의 선택이다. 모든 시험에는 돈이 든다. 그 돈은 사실 나도 살짝 아깝다. 굳이 시험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은 이유다(모르지 또 나중에 필요하면 볼 수도 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혁신학교. 단원평가가 있을 뿐, 중간·기말 시험을 보지 않는다. 어느 엄마는 "전국에 있는 친구들을 대상으로 경쟁하라"라고 했다는데, 고작 25명 정도인 한 반에서 아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한 학기가 끝나고 나오는 통지서만 곧이곧대로 믿을 뿐이다. 그래서다. 지난달 상담시간, 선생님께 다른 사교육은 하지 않으니(심지어 문제집도 풀지 않는다), 공교육만 믿는다고 읍소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풀이한 수학 문제를 보여주며 혼자 공부하면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불안한 내 마음을 진정시켜줬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가면 페르디난드는 원치 않았지만 우연한 사고로, 그를 제외한 모든 황소들이 나가길 바라는 마드리드 투우 시합에 참가하게 된다. 투우 소가 되면 투우사가 찌르면 마지막 창에 죽는 게 대부분이지만(그림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페르디난드 아빠는 그렇게 죽었다) 페르디난드는 죽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투우장의 법칙을 따르지 않아서다. 페르디난드는 투우사들이 무슨 짓을 해도 싸우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신 투우장 한가운데서 페르디난드는 자기다운 방법으로 폭력에 저항했다. 그저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뿐이었다.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대학입시라는 투우장 속으로 내 아이가 어떻게 들어갈지 아직 잘 모르겠다(물론 들어서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염두에 둔다). 그때까지 때때로 불안감이 엄습할 거다.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림책 속 이 글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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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엄마는 페르디난드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비록 암소긴 해도 이해심 많은 엄마였기 때문이지요. 엄마는 페르디난드가 그냥 그곳에 앉아 행복하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었어요.'
만약 엄마가 페르디난드에게 다른 황소들처럼 똑같이 살기를 강요했다면 페르디난드는 고향으로 살아 돌아올 수 없었을 거다. 그게 투우 소의 운명이니까. 그러나 엄마는 그런 삶을 강요하지 않았고, 그 결과 페르디난드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코르크 나무 아래 앉아서, 그저 조용히 꽃향기만 맡고 있을' 수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에 '페르디난드는 아주 행복해요'라고 썼다.
나도 페르디난드 엄마처럼, 그런 선택을 하고 싶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EBS 프로그램 '보니 하니'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행자가 전화 연결된 시청자에게 물었다. "요즘 우리 학생은 무슨 고민이 있어요?" 초등학생 1학년부터 4학년들까지 고민은 한결같았다.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 우리 아이들도 설마 그럴까. 두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요즘 무슨 고민이 있어?"
1학년 딸 "공부하는 거."
5학년 딸 "숙제가 너무 많은 거."
내가 고민해야 할 게 분명해졌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학원 대신 알아봐야 할 게 더 많아졌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2017년 5월 1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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