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외국계 투기세력에 경영권 보호 없이 견제만 강화"
현대기아차 양재동사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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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국내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안으로는 정부 각 부처가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명분으로 압력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다. 또 이 틈을 노려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현대차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는데, 다른 외국계 펀드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가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5일 법무부와 국회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 소액주주권 보호를 핵심으로 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외국계 투기 세력 등이 국내 기업 경영을 간섭할 수 있다는 재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지만 최근 법무부가 소액주주 권리 보호 강화 차원에서 국회에 '상법 일부 개정안 검토 의견'을 국회에 보고하며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영권 보호수단 없이 대기업 대주주에 대한 견제 수단만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이사 1명당 전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주주의 의도대로 이사진을 구성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몰아 특정 이사 선임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3명의 이사를 선임한다고 할 때 특정 이사에 대한 의결권을 포기하고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이사 1명에게 찬성표나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 투기세력이 이를 활용할 경우 사내, 사외 이사진 구성에서 본인 입맛에 맞는 사람을 추천하고 표를 몰아줘 선임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감사위원 별도 선출 역시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감사위원을 1명 이상 선임할 수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도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다음달 10일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GS,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두산 등 10대 그룹 전문경영인과 정책간담회를 연다. 수 차례 순환출자 해소를 비롯한 지배구조개편안을 요구했던 김 위원장은 정책 방향 설명과 업계 애로사항을 청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추가 개혁을 주문할 가능성도 높다. 공정위는 지배구조 외에도 대기업 공익재단 전수조사와 지주사들의 수익구조 실태 점검 방침을 밝히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자발적 매각을 요구하고 나섰다. 관련법 처리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에서 금산분리를 직접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 20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관련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해당 금융회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민의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재계는 정부가 경영권 방어 수단은 마련하지 않고 기업 견제 수단만 내 놓는 것은 국부를 유출하자는 말과 같다는 입장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대주주들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려면 해외처럼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도 함께 도입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재벌, 대기업의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이라며 "보호수단 없이 견제수단만 만들겠다는 것은 국부를 유출하자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법무부, 공정위, 금융위 등 정부 전체 기조가 대기업을 괴롭히는 것이 목적처럼 보일 정도인데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상법개정안이 법무부 안대로 통과될 경우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면서 "지금도 엘리엇이 현대차, 삼성전자 지분 1%만으로도 회사 경영을 흔들고 있는데 아예 이사를 선임해 놓고 마음대로 하라는 얘기와 똑같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금융위의 삼성을 상대로 한 금산분리 압박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유 팀장은 "금융과 산업이 융합되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금산분리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은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며 "방법론적으로도 일시에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모두 해소하라는 얘기는 정책적 당위성만 앞세운 출구 없는 미로로 몰아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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