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 119 "과장·대리·팀장 등 상사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우 67% 가장 많아"
사진=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황효원 기자] #중소기업 여행사에 재직한 A 씨는 직장 상사의 끝없는 갑질에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A 씨가 1주일에 3번 꼴로 작성한 보고서는 늘 이유 없이 찢겨지거나 "X대가리"라는 인격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A 씨는 직장 상사의 끝없는 욕설과 "너네 부서는 꼴등이니까 야근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야근을 했지만 그는 야근 수당을 받지 못했다. A 씨는 "1시간에 1번씩 보고하라", "우리는 학벌 안보니까 너를 뽑은 것"라는 상사의 인격모독성 발언도 감내해야만 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물잔갑질'과 끝없이 밝혀지는 오너일가의 갑질 폭로 이후 참아왔던 직장 내 갑질을 폭로하는 직장인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폭행, 인격모독성 발언 등 직장 내 갑질의 분야는 다양하지만 정작 현행 근로기준법으로는 이러한 행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국내 유명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B 씨는 "입사 후 회식자리에서 겪은 일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B 씨의 회사는 첫 출근한 그를 환영한다며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지병이 있어 술을 마시지 못하는 B 씨는 상사에게 이를 말했지만 상사는 "누가 내 말을 어겨"라고 말한 뒤 그의 머리 위에 술을 쏟았다. 그 순간 그는 말 할수 없는 모욕을 겪었고 이후 술자리에서도 매번 감내해야 했다. 결국 그는 1년 후 퇴사를 결심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갑질'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졌지만 욕설과 폭력이 한국 내 직장에서는 드문 사례가 아니다. 노동사회단체 직장갑질 119는 "조 전무 사건이 알려진 뒤 직장 내 폭행 관련 제보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5개월 간 들어온 폭행 관련 제보 중 신원이 확인된 42건을 공개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과장,대리,팀장 등 상사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우 67%(24건)으로 가장 많았다. 물건을 던지거나 위해를 가하는 준폭행은 33% (14건), 위험한 물건을 던져 상해를 입힌 특수폭행도 4건에 달한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는 사장이나 임원 에게 폭행을 당한 경우도 9건이었다. 하지만 폭행보다 빈번한 욕설이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준폭행'은 근로기준법에 규정 조차 존재하지 않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피해사례로는 업무 처리가 늦어지자 직원 책상을 내리치면서 책상 위 물건을 집어던진 사장, B 씨의 경우처럼 회식자리에서 술잔을 내던지는 상사의 폭행을 당하는 등 직장인들은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폭행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아닌 상사의 폭행은 처벌하기 어렵다.
피해자가 폭행 사실을 회사에 알려도 가해자를 처벌하기 보다는 회사 내부에서 덮고 넘어가는 등 은폐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유럽은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스웨덴은 1993년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제정했으며 핀란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직장 내 괴롭힘 특별조항을 만들었다. 프랑스의 경우도 직장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가해자와 사측이 괴롭힘 없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근로기준법이 있지만 사실상 갑질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나 국회 모두 관련법 개정엔 미온적이다. 국회에서 직장 괴롭힘을 막기 위한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단 한건도 없다. 또 발의 법안 모두 '예방' 위주로, 가해자 '처벌'에 대한 법안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직장갑질119에서 활동하는 이용우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직장 내 폭행은 심각성을 고려해 일반폭행과 달리 폭넓게 인정하는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직장 내 일반폭행을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하는 특별규정을 두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라고 말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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