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찮은 엄마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식구가 늘면서 나는 시간과 몸을 더 잘게 쪼개야 했다. 엄마와 수리는 서로 나쁘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생활을 시작한 엄마에게 수리는 친구가 되어 주었고, 수리 역시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이 줄었으니. 내게만 분신술이 필요할 뿐이었다. 늘 서둘러야 했고 집중력이 흩어져 깜빡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자괴감과 한탄이 늘어 가는 중에 나를 가장 혼돈스럽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수리로 인한 수고로움은 힘들게 여겨지지도 않거니와 화가 났다가도 금방 맥없이 누그러지는데, 어째서 엄마한테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엄마 건강이 시원치 않다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닌데 엄마가 이런 건 좀 알아서 해줬으면, 저런 건 좀 안 해줬으면 하는 게 자꾸 눈에 들어왔고, 몇 번 참다가는 결국 짜증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회의가 밀려들었다. 왜 수리를 대할 때처럼 가볍고 즐거운 마음이 ‘내 엄마’한테는 안 되는 걸까 하고.
▶수리와의 시간, 엄마와의 시간
다행스럽게도 이런 내가 부정적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고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이 있다. 수리한테 무심코 내뱉는 말 중에 어릴 적 엄마에게 들었던 말들, 수리한테 들이는 수고로움 중 여태 엄마가 자식들에게 해준 일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그렇다. 가령 이런 거다. 목욕을 싫어하는 수리를 어르다 지쳐 “가만히 있기만 하면 씻겨 줘 말려 줘 끝나고 간식까지 주는데, 도대체 넌 뭐가 힘들다고 이 난리야!” 하고 짜증을 퍼붓다가, 퍼뜩 회상한다. 어릴 적 목욕탕에 가면 연년생인 언니를 씻기고 나를 씻기고 동네 할머니 등까지 밀어주고 나서야 후다닥 몸을 씻던 엄마를. 집에 오면 앉을 틈도 없이 곧장 맛국물을 내 우동을 넣고 훌훌 끓여 다섯 식구 점심상을 차리던 엄마를. 그리고 그런 엄마한테 우동은 지겹다고, 짜장면 좀 사 먹자고 투정 부리던 나를.
한밤중에 수리가 빈 물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비몽사몽 중 일어나 물을 채우다가 또 문득 생각한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의 컴컴한 새벽녘, 방 세 군데 연탄불을 가느라 마당을 가로질러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슬리퍼 소리를. ‘엄마는 무섭지도 않나’ 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당기며 다시 잠을 청했던 나를.
수리 대변을 치울 때 골똘히 들여다보며 굳기와 성분, 냄새를 살펴 아픈 데는 없는지 체크하다가 또 불현듯 떠올린다. 수년 전 허리를 다쳐 한 달 반을 꼬박 누운 채로 지내야 했던 엄마의 기저귀를 갈 때마다 숨을 꾹 참고 후다닥 해치우기 바빴던 나를.
그랬다. 엄마는 내게 ‘주는 존재’였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는 내게 밥을 주고 응석을 받아 주고 나의 안녕을 빌어 주었다. 지금은 늙고 아픈 엄마가 돼 버려 줄 것이 마음밖에 안 남았지만, 철이 덜 든 나는 엄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여전히 많은 걸 받기만 바라고 있는 거다. 수리와 함께하며 순간순간 소환되는 엄마의 과거에 나는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는다. 의도치 않게 ‘죽비부인’이 된 수리로 인해 나는 엄마를 제대로 보고, 자식으로 갖는 터무니없이 끝 없는 기대를 하나씩 내려놓자고 결심한다. 물론 아직은 멀고 멀었다. 엄마 마음을 안다는 건. 그건 아마 수리와 시간을 함께하면서 더 깊이 그리고 더 진하게 깨달아 가기도 할 테지.
[글과 사진 이경혜(프리랜서, 수리 맘)]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26호 (18.05.01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