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건강한 감각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묘하게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들은 넘쳐나는데 왜 세계 각국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을 걱정할까. 정보의 바다를 채운 이야기들이 가치가 없어서? 책을 통해 전해지는 인생의 의미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을 통해 전해지면 다를까? 임신 중에 종이책을 많이 본 엄마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성향이 다를까? 어쩌면 그런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저녁을 먹고 요즘 읽는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란 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독서란 단순히 그 내용만을 취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 손의 감각과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종이의 냄새, 책을 읽는 동안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잠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 같은 고립감. 물론 같은 책이라도 수험서처럼 목적이 뚜렷한 책이나 함량미달의 책이 주는 느낌은 다르겠지요. 하지만 사람을 몰입시키고야 마는 좋은 책을 읽는 일은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풍부한 자극을 몸과 마음에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어쩌면 구세대 인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환자를 살피다보면 몸과 감정의 감각들이 저하된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삶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만날 그 밥에 그 나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의 단조로움 이상으로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한다고 우리는 착각하지만, 실상 그것이 우리 내면에 일으키는 파문은 과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색깔만 다른 막대사탕을 먹는 것처럼 포장과 향은 다양하지만, 먹고 나면 설탕 맛만 남는 것처럼요.
게다가 요즘 사람은 과거보다 몸을 적게 쓰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감각의 양이나 종류, 그리고 즐거움이 줄었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운동을 하고 아웃도어라이프를 찾아 떠나기도 하지만, 몸보다는 머리와 감정의 노동이 많아졌지요.
반면 스마트폰과 컴퓨터로부터 받는 자극은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화면의 글자나 그림, 혹은 영상만을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훨씬 많은 정보가 우리 뇌를 흥분시킵니다. 거북목과 같은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신경계 과부하로 인한 다양한 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접하는 정보의 양적 과부하가 커지는 반면, 정보의 깊이는 얕은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의 깊이란 대체로 그만그만하고, 다양한 듯 보이지만 일정범주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접하는 사람 또한 그만그만한 수준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자칫 우리는 얄팍하고 수명이 짧은, 별 것 아닌 정보가 일으키는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이유도 모른 채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기 쉽지요.
그리고 이 예민함과 피로함의 끝에는 둔감함이 따라옵니다. 동일한 자극의 반복은 더는 흥분을 일으키지 못하니까요. 이런 상태가 환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저하된 상태입니다. 이런 환자는 매사에 시큰둥하거나 때론 사소한 것에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상태를 정상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일부 사람은 약물이나 엽기적인 행각을 통해 더 강한 자극을 탐닉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추세는 아마도 갈수록 더 해질 것 같습니다. 현대인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을 포기하는 일은 더 나은 도구가 생기거나 전 지구적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저 또한 이 글을 쓰는 데, 진료기록을 정리하는 데 모두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고요.
인터넷 자극에는 뭔가 결여된 것이 있어 보입니다. 같은 식사라도 집밥과 식당밥이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맛있어 보이지만 계속 먹으면 맛도 못 느끼게 되고 건강도 나빠지는 것 또한 비슷합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집밥과 같은 자극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이전에 인간종이 과거에 해왔던 일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적어도 산업화 이전에 사람들이 했던 일들에서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단순히 다른 취미가 없어서, 남에게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말하는 용도가 아니라 미친 듯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속도를 조정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읽기 운동을 펼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고요. 몸을 움직여서 얻는 순수한 즐거움,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에서 느끼는 맛과 향, 흙을 밟고 자연을 접하는 감촉, 인위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나 고요함과 같은 것들이 편안한 집밥과 같은 자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민해지고 지친 마음과 몸에는 이러한 자극들이 가장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사람도 있지만, 저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아주 정직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갑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현대사회에 넘치는 휘발성 자극들은 꽤 위험해 보입니다. 없앨 수도, 피할 수도 없다면 그 자극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고 거기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휴대폰 광고처럼 잠시 그 자극들을 꺼 두고 회복을 위한 자극을 접하는 것이 좋은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자 : 김형찬 다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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