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9 (화)

작가 한강 "'흰' 쓰며 생명 생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개정판 출간하며 '작가의 말' 덧붙여…퍼포먼스 사진 추가돼

연합뉴스

작가 한강
(서울 AP=연합뉴스) 2016년 5월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는 한강.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고독과 고요, 그리고 용기. 이 책이 나에게 숨처럼 불어넣어준 것은 그것들이었다. 나의 삶을 감히 언니-아기-그녀에게 빌려주고 싶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생명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야 했다."

작가 한강(48)은 소설 '흰' 개정판(문학동네)을 출간하면서 덧붙인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흰'은 올해 영국 문학상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로 올라 최근 더 주목받는 작품이다. 작가가 소설 '채식주의자'로 첫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직후인 2016년 5월 한국에서 출간됐고, 영국에는 '채식주의자'를 영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다시 번역해 지난해 11월 출간됐다.

소설이면서 시 성격도 지닌 이 작품은 강보, 배내옷, 소금, 눈, 달, 쌀, 파도 등 세상의 흰 것들에 대해 쓴 65편의 짧은 글을 묶은 것이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숨을 거둔, 작가의 친언니였던 아기 이야기에서 출발해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이번에 2년 만에 나온 개정판은 작가가 이 작품 출간을 앞두고 '흰'을 주제로 행한 퍼포먼스 촬영 사진을 새로 담았다. 이 퍼포먼스는 죽은 언니-아기를 위한 옷을 만들고('배내옷'), 다하지 못한 말을 가두는('밀봉') 행위를 표현한 것이다. 출판사 측은 "작가의 고요하고 느린 퍼포먼스들은 최진혁 작가가 제작한 영상 속에서 그녀의 언니-아기를 위한 행위들을 '언어 없는 언어'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첫 출간 당시 '작가의 말'을 붙이지 않았다가 이번에 새로 썼다. 작품을 쓰기까지 배경을 자세히 소개하며 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전하는 내용이다.

자신의 소설을 번역한 폴란드 번역가의 초청으로 전작 '소년이 온다' 출간 뒤인 2014년 8월 말 열네 살 아들과 함께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난 이야기, 아이가 한 학기 학교를 다니는 동안 도시 곳곳을 틈 날 때마다 산책하며 '흰'의 내용을 구상한 이야기가 나온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 책이었다. 그 책의 시작은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의 기억이어야 할 거라고, 그렇게 걷던 어느 날 생각했다. 스물 네 살의 어머니는 혼자서 갑작스럽게 아기를 낳았고, 그 여자아이가 숨을 거두기까지 두 시간 동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계속해서 속삭였다고 했다."

그곳에서 지내던 가을에 작가는 바르샤바 항쟁 박물관을 보러 갔다가 부설극장에서 1945년 미국 공군기가 촬영한 그 도시의 영상을 본다. 당시 독일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돼 '흰' 도시 모습을 보며 "그 도시의 운명을 닮은, 파괴되었으나 끈질기게 재건된 사람을. 그이가 내 언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쩌면 아직도 나는 이 책과 연결되어 있다. 흔들리거나, 금이 가거나, 부서지려는 순간에 당신을, 내가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흰 것들을 생각한다. 나는 신을 믿어본 적이 없으므로, 다만 이런 순간들이 간절한 기도가 된다."

양장본. 196쪽. 1만2천500원.

연합뉴스


mi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