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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지방정부는 어쩌다 토호들의 먹잇감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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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정치발전소] 지방자치 30년, 토호보다 강한 지역당 뿌리내려야

지방선거가 이제 1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각 당이 이번 지방선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먼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지방분권으로 가는 전환적 선택"으로 규정하고 "촛불로 중앙의 권력은 바꿨지만 지방의 부패한 토호세력들과 적폐세력들은 여전히 건재하다"며 '토호' 세력을 적폐 근원으로 지목했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 상당수 역시 "토호 적폐 척결"을 출마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제시했다.

야당인 바른미래당의 박주선 공동대표는 "이번 지방선거는 기득권세력 대 미래,개혁세력의 대결"이라며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겨냥해 "거대 양당은 '탐욕 카르텔의 정점'으로서 지역 토호 세력과 결탁해 온갖 특권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규정했다. 전․현 집권세력을 싸잡아 이들과 결탁한 '토호' 세력을 지방 기득권의 핵심으로 지목했다.

자유한국당도 다르지 않았다. 전 경남지사인 홍준표 대표의 측근임을 강조한 경남의 한 기초단체출마자는 "몇몇 토호 세력과 기득권 세력들이 시장권력에 빌붙어 ㅇㅇ시를 좌지우지해왔다"며 "자신의 뱃속만 채우는 ㅇㅇ시의 5적들과 같은 무리들의 잔재를 송두리째 뽑겠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문제는 토호였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모든 정당이 '토호'를 지방정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셈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토호는 천연기념물이라도 되어 있을까? 역대 지방선거마다 '토호 vs. 개혁'이라는 적대적 구도를 동원해 상대를 토호 대표세력으로 몰아 붙였다. 그러나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단체장․지방의원의 교체가 빈번했지만, 토호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임기 중 토호와 연관된 각종 비리로 주저앉는 단체장․의원에는 여야의 구분도 없었다. 모든 정당이 토호 축출을 약속하는데, 모든 정당이 토호의 자장 내에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지방을 지배하는 사익추구 집단이라는 의미로 "토호(土豪)"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 라고 한다. 토호의 폐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조선시대에 시작된 토호와의 싸움을 21세기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은 쉬 납득하기 어렵다.

'토호'를 지방정치의 근본 문제로 보고, 공공의 적인 이들을 척결하겠다면, 토호의 실체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의견은 분분하다. 건설족과 이와 연계된 먹이사슬을 지적하기도 하고, 지방의 언론, 학원사업가 등 여론 형성에 영향력을 보유한 지방 엘리트로 표현하기도 한다. 대체로 지방의 경제계, 정계, 관계, 언론계 등을 지배하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들이 열거될 뿐, 누구하나 그 실체를 명확히 하지 못했다.

오늘날 '토호'가 문제되는 것은 지방의 한정된 자원이 공익에 따라 민주적으로 배분되는 것이 아니라 대표성 없는 사익 추구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토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토호란 재력과 권력을 기반으로 지방정치와 경제, 여론 전반을 조종하는 미스터리한 지하정부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지방정치가 사익집단 일방에 지배당하는 것은 토호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다양한 사익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 합의를 만들고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공익의 내용을 정하는 정치의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익과 가치를 서로 인정하는 가운데 상호 경쟁․ 타협하는 다원주의적 협의 공간이 넓어져야 사익 일방이 지방정치 전체에 범람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시민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 시민의 자율적 결사체 등이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민주주의가 살고, 지역이 갖는 자립적 가치가 살아난다.

최근 영남과 호남의 대표적 정당의 지역당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과연 지방의 정당들은 지방 시민의 호민관으로서의 권력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까. 그러나 지역당의 모습은 지방정치의 취약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광역 시도당은 대체로 상근자 5-6명으로 구성된 집행부가 주로 연락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지방 정책 연구, 체계적인 당원교육, 지역 시민의 정치적 조직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광주에서 만난 민주당의 한 지역위원장은 정당이 대안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에 "당원인 시장은 5000~6000 명의 스텝과 일하지만, 시당에는 5-6명 정도의 상근자만 있을 뿐이다. 대안정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솔직히 경선 관리만으로도 벅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역당은 지역의 시민 속에 뿌리내리고 있나?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공약이 정당에 상관없이 7-80%가 같다는 것은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중앙 차원에서는 노동이나 중산층․서민 등 계층적 기반을 호명하지만, 생활공간인 지역에는 몇 가지 정치적 수식어를 제외하면 '주민'이라는 모호한 호명만 있을 뿐 누구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표하는지 불투명하다. 아무리 당원수가 수십만이 넘는다 해도 번지수 없는 정당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정치는 협소하고 공허하다.

지방정부의 구조도 문제다. 지방정부의 권한은 거의 모두 자치단체장에게 집중되어 있다. 상하수도 관리나 각종 인허가 등 기본 업무를 제외하면 자치단체장이 하는 일은 크게 복지와 개발(경제)로 나눠진다. 복지는 예산은 크지만 대부분이 중앙 위임사무로 자율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자치단체장에게 개발사업은 매력적인 부분이 된다. 개발사업을 매개로 형성된 지방정부와 토호의 먹이사슬은 토호들의 탐욕이 아니라 현행 지방자치단체의 구조적 문제가 큰 몫을 한다.

우리는 이제까지 '토호 vs. 개혁', '토호 vs. 시민'이라는 이분법 구도로 지방정치의 모든 문제를 정의해 왔다. 지난 30여 년 간 지방자치 경험은 이런 적대 구도는 현실의 지나친 단순화이며 개선할 대안을 찾는 실천적 노력을 회피하는 수단임을 확인시킨다.

지방정치의 중요한 권력 주체인 정당이 정치 밖 시민을 대표하는 호민관이 되지 못하면 토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토호를 극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토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지 말고, 지역당 스스로 토호보다 더 강한 토호가 돼라. 다양한 시민의 더 큰 이해에 뿌리내린 공익적 토호 말이다.

나는 이것이 모두가 말하는 토호척결론에 편승해 스스로 얼마나 선한 대표인가를 앞세우는 공허한 정치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자세라 생각한다.

또한 취약한 정당과 시민결사체, 위기의 다원주의라는 지방정치의 현실을 살피지 않고, 이른바 "연방 수준의 지방분권 국가"를 말하며 헌법 문구하나로 지방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지방의 정당, 정부, 시민이 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분권은 토호분권일 수밖에 없으며, 토호의 폐단을 제도화할 우려가 크다.

큰 틀의 제도 개혁은 다 익은 사과가 저절로 나무에서 떨어지듯 성숙된 변화의 축적된 결과일 때 작동가능하고 실천적일 수 있다. 공허한 큰 그림이 아니라 지방정치 강화를 위해 대통령이, 중앙정부가, 정당이, 지방이 할 수 있는 '지금 여기의 작은 변화'를 만드는 데 집중해주길 바란다.

기자 : 김성희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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