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
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
대형 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
최근에 그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상어와 흑가오리에게 먹이를 주다가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내가 헤엄치는 것을 논다고 말하며 손가락질한다
해저터널로 들어온 아이들도 죽음을 앞둔 어른처럼 돈을 안다
유리 벽을 두드리며 나를 깨운다
나는 산호 사이를 헤엄쳐 주다가 모래 비탈면에 누워 사색한다
나는 몸통이 가는 편이고 무리 짓지 않는다
사라진 지느러미가 기억하는 움직임에 따라 쉬기도 한다
누가 가까이 와도 해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
궁핍하지만 대담하게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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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나는 한동안 무척 울적했다. 순전히 김이듬 시인 때문에 말이다. 이 시를 쓴 김이듬 시인은 작년인가부터 ‘책방 이듬’이라는 조그마하지만 알찬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시의 제목인 “아쿠아리움”은 아마도 그 서점을 대신한 말인 듯싶다. 내가 아는 김이듬 시인은 시에 적힌 대로 “몸통이 가는 편이고 무리 짓지 않는다”. 그런 시인이 그것도 요즘 같은 세상에 책방을 열었다니 사실 나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시인은 지금 얼마나 절박하게 "헤엄치"고 있을까. 그런 자신을 향해 “논다고 말하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시인은 얼마나 절망했을까. 아니 그보다 “돈이 필요한 날에도” 무작정 참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곤궁한 처지가 얼마나 처참했을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고 선뜻 말한다. 아, 이 “대담”한 “궁핍”이라니! 고맙고 미안하다, 시인이여. 당신이 있어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우리는 “자라고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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