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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이상한 댓글 시스템] 맘만 먹으면 누구든 '댓글 조작러'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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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영 기자] 댓글 조작은 주로 기업의 일이었다. 손쉽게 홍보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댓글 조작 문제가 연거푸 불거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수법이 교묘해지면서 댓글 조작이 손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누구나 댓글 조작러가 될 수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상한 댓글 시스템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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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뉴스를 볼 때 댓글을 얼마나 읽을까. 댓글은 또 얼마나 자주 올릴까. 배지양 전남대(신문방송학) 교수가 10대부터 40대까지 23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댓글을 읽는 빈도는 평균 4.91점, 댓글을 올리는 정도는 평균 2.40점이었다.[※참고 : 1점=전혀 읽지(올리지) 않는다. 7점=매번 읽는다(올린다).]

댓글은 자주 읽지만 직접 쓰는 경우는 드물다는 뜻이다. 댓글이 여론을 형성하고, 민심을 반영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실은 소수 의견이 전체 의견으로 둔갑할 리스크가 크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이런 허점을 악용하는 일은 숱하게 많다. 기업이 제품 광고나 이미지 개선을 목적으로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SNS 게시글 등을 조작하는 일은 더이상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이제는 정치적 목적으로 댓글을 조작하는 사례까지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첫 사례는 2012년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이다. 당시 국정원은 사이버팀 직원들을 동원해 SNS 상에 특정 정치인의 지지글과 정책 옹호글을 올리고 댓글을 조작해 여론을 선동했다. 국가예산으로 민간인 댓글부대까지 꾸려 정치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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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고한 최종 판결에 따르면 국정원의 불법 정치관여ㆍ선거운동은 총 391개 트위터 계정을 통한 정치관여 28만8926회ㆍ선거운동 10만6513회, 찬반클릭 정치관여 1200회ㆍ선거운동 1003회, 인터넷 게시글 및 댓글 정치관여 2027회ㆍ선거운동 93회에 달했다.

같은해 또다른 정치세력의 댓글공작이 벌어졌다. 주체는 국방부 장관 직할 사이버사령부. 지난 2010년 북한의 사이버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신설된 사이버사령부의 주된 임무는 SNS를 통해 여권 대선 후보를 지지하고 정책을 선전하는 일이었다. 야권 후보와 특정 정당을 비난하는 활동도 왕성했다. 군무원, 군인 등 사이버사령부 소속 요원들이 트위터, 블로그 등에 게시한 여론조작글은 수백건에 달했다.

직원과 민간인 동원해 댓글조작

최근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까지 불거졌다. 이 사건의 특이점은 댓글을 조작하는 프로그램인 '매크로'가 쓰였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에 따르면 드루킹 역시 처음엔 인력을 동원해 댓글을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 해당 인터넷 기사의 링크를 걸면 회원들이 가담해 댓글을 달거나 추천을 누르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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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방식은 드루킹이 매크로를 구입한 시점으로 알려진 1월 15일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이틀 뒤인 1월 17일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된 기사 댓글의 추천수를 조작하는 데 이 매크로가 사용됐다.

드루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에 따르면 이날 한 댓글의 추천수가 약 2분30초만에 700개가량 급증했다. 여기에 사용된 614개 아이디 중 상당수는 드루킹이 운영하는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이후 매크로 사용이 의심되는 6건의 기사에서도 614개 아이디 가운데 205개가 댓글 조작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댓글 조작 민주주의 흔들 수도

매크로를 사용한 댓글조작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크로를 사용하면 기존과 같이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물량공세를 펼치지 않아도 손쉽고 빠르게 댓글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문제는 조작이 쉽고 빠르다는 점 외에도 구입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데 있다"면서 "그만큼 댓글 조작 행위가 무분별하게 퍼질 수 있다는 건데, 이후 댓글 조작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매크로의 더 큰 문제는 댓글 조작을 분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드루킹은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회원 아이디를 차용해 손쉽게 추적을 당했지만 업자에게 아이디를 구입하면 포털사이트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나기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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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드루킹 사건을 두고 설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여야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입씨름하기 바쁘다. 하지만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건 앞으로의 일이다.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 하나의 변곡점이 될 수 있어서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의 댓글 조작은 국정원과 국방부 등 국가권력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댓글 조작러'가 될 수 있다. 댓글 조작이 수월해지고 그 수법이 다양해지면서 자칫 정치세력의 공작 수단으로 고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우려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댓글 조작 리스크를 하루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어선 안 된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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