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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일본이 먼저 알아본 '트레몰로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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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중앙일보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진 기타리스트 박규희. [사진 뮤직앤아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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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0여회, 일본에서 60여회. 기타리스트 박규희(33)의 한해 평균 공연 횟수다. ‘한국보다 외국에서 먼저 알려진’이란 타이틀을 정당하게 받을 만한 연주자다. 박규희는 일본의 음반사 폰텍에서 2010년 첫 음반을 낸 후 올 2월 낸 ‘하모니아’(콜롬비아 재팬)까지 총 8집을 발매했다. 그의 음반들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종종 올리고 도쿄 공연은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클래식 기타 시장이 넓은 일본이 먼저 알아본 한국 기타리스트다.

섬세하고 풍부한 연주를 한다는 평을 듣지만, 박규희의 연주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것은 완성도 높은 트레몰로(tremolo)다. 몇개의 음을 규칙적이고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인 트레몰로는 모든 음을 고르고 정확하게 연주해야 해서 어렵다. 박규희는 이 기법을 마치 쉬운 듯이 자연스럽게 연주하지만 나오는 소리는 놀랄만큼 치밀하다. 일본에서는 ‘트레몰로 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오른손의 엄지로 주요 음을 누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반주 화음을 빠르게 반복해야 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제 손가락이 트레몰로에 적합하게 생겼다.” 박규희는 “손가락이 유난히 얇아서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기가 쉽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기타를 시작했다는 점도 도움이 됐다. “어릴 때는 힘이 없기 때문에 힘을 빼고 연주하는게 습관이 됐다. 성인이 기타를 시작하면 힘 빼는 연습을 해야하는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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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희는 세 살에 기타를 시작했다.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다. “주변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상당히 일찍 시작한 편이다. 일본의 유명한 기타리스트 무라지 카오리(40)가 부모님이 기타를 하셔서 두 살에 시작한 경우만 봤을 뿐”이라고 했다. 박규희의 부모님은 음악과 상관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본 유학 중이던 세 살에 그를 기타 학원으로 데려간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비틀즈를 너무 좋아해서 ‘예스터데이’를 태교음악으로 들려주다가, 급기야 통기타로 쳐보기 위해 기타 학원을 찾았다.” 하지만 학원은 통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를 가르치는 곳이었고 선생님은 세 살의 박규희에게 어린이 사이즈의 기타를 권했다.

“기타가 꼭 내 성격 같아서 좋았다”고 했다. 5세에 한국에 돌아와 15세까지 머물렀던 그는 “선생님이 질문하거나 발표하는 게 제일 싫었던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했다. 기타 또한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기보다는 다른 악기, 또는 사람 목소리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한 번도 곁눈질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해 도쿄와 오스트리아 빈에서 학위를 땄다. 전세계의 기타 콩쿠르에 출전해 1위를 여섯 번, 2위를 두 번 수상했다. 내성적이던 박규희는 무대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해졌다. 그는 “일본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편”이라며 “이 때문에 일본 청중이 특별하게 봐주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클래식 기타가 연주할 수 있는 곡의 범위는 의외로 넓다. 16세기의 르네상스부터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넘어 스페인ㆍ남미의 낭만시대 작곡가, 20ㆍ21세기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다룰 수 있다. 박규희는 “기타 한 대로 섬세한 음악부터 웅장한 소리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바흐가 류트를 위해 작곡한 곡부터 악기가 부서질 정도로 때려야 하는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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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여는 한국 독주회에서도 욕심껏 기타 독주곡들을 보여준다. 페르난도 소르, 미구엘 료벳, 어거스틴 망고레, 알베르토 히나스테라 등 작곡가 8명의 13곡을 골랐다. “좋은 기타리스트는 감정의 서랍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작은 경험과 느낌도 다 저장했다가 음악에 따라 꺼내서 쓰려고 한다.” 박규희가 기타 한 대로 이끌어갈 독주회는 2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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