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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경기도에 집 넘치는데…서울도 못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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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집값이 오른 이유는 정말 공급 부족 탓일까.”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서울 집값 급등=주택 공급 부족’이란 등식을 당연한 것처럼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을 뒤집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이 주인공이다. 한국감정원은 매년 토지 공시지가와 주택 공시가격 등을 평가하고 각종 부동산 지표를 분석·발표하는 공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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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옥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 /조선DB


그는 최근 발간한 ‘부동산 포커스’(111호)에서 “서울에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앞으로 서울과 수도권 주택 시장에서 집값과 전세금 동시 하락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기도 공급 확대가 서울에도 영향 미쳐”

채 원장은 최근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전철·도로 등 교통 인프라가 크게 확대되면서 경기도 주택이 서울 주택의 ‘대체재’ 성격이 과거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하면 서울 집이 너무 비싸다면 경기도에서 주택을 구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벌어지는 서울의 전세금 하락 현상은 경기도 주택 공급 확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 아파트 준공 물량은 2011~2014년에는 연간 5만~6만 가구였지만 2015년 7만1000여 가구, 2016년 9만8000만여 가구, 2017년 13만4000여 가구가 준공됐다. 아파트 준공 물량 증가는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하려는 수요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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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아파트 준공물량 추이. /한국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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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근 ‘탈(脫) 서울’과 경기도 이주 증가로 서울 인구는 줄고, 경기도 인구는 늘어났다. 지난해 경기도는 6만가구가 순유입됐지만 같은 기간 서울은 2만8000가구 줄었다. 경기도로 유입되는 가구 수(주택 시장의 수요자)가 늘고 있지만, 워낙 공급량(주택 준공물량)이 많아 경기도 전세금은 여전히 하락세다. 서울은 경기도로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전세금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채 원장은 “서울 주택 가격이 상승한 이유가 공급 부족에 있다면 전세 가격도 상승해야 하는데 오히려 전세금이 하락하고 있다”며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에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가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집값 상승 원인으로 지목하고, 재건축에 제동을 걸자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에 반발했다. 이 때 정부 정책을 비판한 논리는 이렇다. “서울 집값이 오르는 것은 주택 공급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정부가 오히려 재건축에 제동을 걸어 공급 부족을 더 부추기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집값 급등 촉발”

채 원장은 서울 재건축 아파트 가격 급등에는 ‘주택 공급 부족’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실시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재건축 아파트 가격의 급등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시행되기 직전 대다수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 속도를 높였고, 그 결과 주변 지역과 서울 전역의 집값이 연쇄적으로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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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규제 강화로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되자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아파트 주민들이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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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다시 초과이익환수제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 다만, 경기도의 주택 공급이 워낙 많아 강남 재건축발(發) 집값 상승세가 수도권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해 서울 집값 상승 폭이 4~5% 수준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연 20~30%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았다.

그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와 재시행이 반복되면 주택 시장 불안이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부작용을 줄이려면 초과이익환수제가 상시적이고, 지속적으로 시행되는 제도라는 인식을 시장에 줘야 한다”고 했다.

■“서울·경기, 집값과 전세금 동시 하락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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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주택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지수 추이. /한국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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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주택 시장은 ‘경기가 쇠퇴하는 변곡점’이라고 판단했다. 올해 경기도 아파트 준공예정 물량은 18만여 가구로 2017년보다 5만 가구 더 많다. 2019년은 2017년과 비슷한 14만여 가구에 달한다. 이 같은 아파트 준공 물량은 2000년대 후반에 비해 2~3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채 원장은 경기도의 신규 주택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전세주택 공급 확대를 의미하고, 경기도 아파트가 서울 전세 수요까지 끌어들여 서울과 경기도의 전반적인 전세금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는 “주택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많지만 공급량 확대는 그 어떤 요인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이고 확실하다”고 밝혔다.

채 원장은 최근 일부 아파트에서 나타나는 ‘집값 담합’ 등의 현상도 과거 집값 하락기 초기에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집값 담합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장의 큰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면서 “앞으로 ‘미입주’와 ‘전세가 하락’에 따른 역전세, 깡통전세 문제로 시장에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서울의 주택 공급 확대가 아닌 세입자 보호대책 강화와 매매시장 연착륙를 위한 장기적인 주택수급전략을 재검검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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