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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만화·영화를 섞은 기발한 하드보일드 게임 `프레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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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81] ◆만화의 프레임이 게임으로 넘어온다면

만화가 스콧 맥클라우드는 자신의 만화이자 만화이론서인 '만화의 이해'에서 만화의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으로 칸과 칸 사이의 흰 공백을 꼽은 바 있다. 앞선 칸과 다음 칸의 차이가 드러내는 의미는 만화를 읽어나가는 이들에게 사건의 진행이자 시점의 전환으로 다가오며, 각각의 박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미지이자 메시지로 읽힌다. 웹툰의 시대를 맞이하며 만화 속 박스의 의미는 기존과 사뭇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박스 단위의 의미를 읽어 내는 일이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인쇄된 종이 혹은 스크린 안에서 각각의 독립적인 의미로 존재하는 만화의 프레임은 멈춰 있지만 이어지는 프레임 안에서는 하나의 플롯을 구성해 나가는 연결된 요소로 작동한다. 멈춰 있는 그림들의 조합은 그런데 어떤 게임 안에서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작동하기도 한다. 모바일 게임 '프레임드' 시리즈가 그것이다.

◆컷과 컷을 퍼즐로 활용하는 플롯 퍼즐

2014년에 1편을, 2017년에 2편을 출시한 러브샥 엔터테인먼트의 미스터리 퍼즐 게임 '프레임드' 는 만화 프레임을 기본으로 삼는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들은 일상적인 만화의 프레임으로 가득 찬 화면을 만난다. 맨 첫 칸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그림자로 처리된 주인공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비밀이 담긴 듯한 가방을 들고 경찰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냥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면 대개 다음 프레임에서 경찰의 총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게임 오버를 만난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캐릭터를 끝까지 안전하게 움직이기 위해 만화의 프레임을 새로 편집해야 한다. 이번 프레임에서 주인공이 계단을 올라갔다면, 다음 프레임에는 계단 위에 경찰이 없거나 경찰의 시야를 피할 수 있는 내용이 이어져야 한다. 주어진 페이지 안에 흩어져 있는 여러 다른 프레임 중 적절한 장면을 찾아 옮겨 이어 붙여줌으로써 한 페이지를 안전하게 통과해 내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

처음엔 단지 이어질 만한 프레임들을 교체하는 작업만을 요구하던 게임은 스테이지 진행에 따라 좀 더 다양한 작업을 플레이어에게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프레임을 가로세로로 뒤집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앞에 진행된 프레임을 다시 가져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은 읽어 나감이 아닌 퍼즐의 올바른 조합을 내놓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게임은 흩어져 있는 프레임들을 '주인공의 안전한 탈출' 이라는 정돈된 하나의 플롯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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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드` 는 만화의 프레임을 퍼즐로 사용한다. 제대로 된 프레임 배치를 통해 주인공을 맨 마지막 프레임까지 무사히 도달시키면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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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미디어가 만드는 오묘한 결합의 하드보일드

'프레임드' 의 세계는 장르물의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주인공은 모자를 쓴 정장풍 드레스코드로 고전적인 스파이의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시가와 지포라이터, 게임 내내 깔리는 BGM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코믹스의 장면을 게임화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게임 내내 한마디의 대사도 나오지 않지만, 게임은 그저 주요 캐릭터가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오가면서 보여주는 행동들만으로도 충분히 매끄럽게 플롯의 전개를 이끌어낸다.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왜 쫓기는지, 가방 속 내용물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려지지 않지만 그것이 게임 플레이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프레임드' 의 방점이 합당한 서사로서가 아닌, 미스터리 가득한 추격과 회피에 있음을 알려 준다.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재치 있는 프레임 조정으로 피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프레임드'의 의도는 충분하게 플레이어들에게 전달된다.

원재료인 만화에서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의미론적 지점이었던 공백은 게임 '프레임드' 에서는 퍼즐의 아귀가 맞아가는 공간으로 변화하여 나타난다. 물리적인 아귀 맞음이 아닌, 플롯상에서의 아귀 맞음은 서사적인 퍼즐이라는 형태가 되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게임의 장르와 그럴듯하게 들어맞는다. 이 들어맞음은 단지 코믹스의 그것, 혹은 게임의 그것만이 아니라 여러 매체 요소를 종합하여 이끌어 낸 결과다. 형식은 코믹스에서, 각 프레임 안에서의 움직임은 동영상을 통한 영화의 컷에서, 그리고 이를 최종적으로 성공적인 회피라는 하나의 서사로 완성시키는 과정은 게임의 방식에서 가져온다. 적어도 최소한 세 가지 매체 요소가 섞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프레임드'의 플레이 또한 복합적인 행위가 된다. 만화를 보는 듯하면서도 사실 각 프레임은 마치 영화처럼 움직이고 있으며, 이를 완결된 서사로 읽어가기 위해서는 제작자가 의도한 대로 주인공이 살아 나가는 순서를 배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독서의 무언가이면서도 동시에 게임플레이의 무언가이기도 한 복합적 과정이다. 프레임과 프레임의 연결을 플레이어가 직접 이어야 하기 때문에 프레임 사이의 공백이 갖는 의미는 플레이어에 의해 '만들어'진다. 완전히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제작자의 의도에 맞는 플롯을 찾아 가는 이 과정은 일종의 필사와 같은 과정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함으로써 단순 수용 이상의 감상을 만들어 내며 게임이 다루려는 소재, 장르와 묘한 결합을 이끌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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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그래픽과 BGM은 만화, 동영상과 함께 어우러지며 미스터리로 가득한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세계를 조합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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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충분하다

여러 매체의 특징들을 살려내며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성공적으로 살려 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프레임드' 시리즈는 1~2시간이면 엔딩을 볼 수 있다는 분량상 문제가 아쉬움을 남긴다. 퍼즐의 대상이 결국 서사이기 때문에 다회차 플레이도 애매한 특성상 그리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아니다. 그러나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프레임을 활용해 탈출로를 그려 가는, 미스터리 추격전을 다루는 방식의 재미는 결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수준이다. 하드보일드 장르의 팬들이라면 게임에 그리 익숙지 않은 이들이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2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한 모바일게임계의 수작으로 이름 붙여도 모자람이 없을 듯 싶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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