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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우보세]한예슬과 '의료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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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

#2015년 A씨는 분당차병원에서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과 척수병증 진단과 함께 그해 4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A씨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눈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망막 중심 동맥이 막히는 망막중심동맥폐쇄증을 의심한 의료진은 응급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A씨는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올초 서울중앙지법은 차병원이 A씨에게 퇴직금, 치료비, 간병인 비용, 위자료 등을 합산해 1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차병원은 지난해 7월, 제왕절개 수술 중 신생아 머리에 2cm 길이 칼자국을 내고도 3개월 뒤에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는 했는데 의료사고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배우 한예슬. 지방종 제거 수술 후 왼쪽 겨드랑이 아래 옆구리에 큼지막한 화상이 남았다. 한씨가 SNS에 두차례 사진과 함께 차병원 과실을 폭로했다. 차병원은 그 때마다 사과와 함께 보상, 원상회복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차병원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다. 한예슬 사건에서 첫 느낌은 '여배우에게 치명적이겠구나'였다. 그리고는 '차병원이 생각보다 빨리 대응을 잘하고 있다'에서 곧 이어 '만약 나였다면?'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한예슬 의료사고'에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의료사고 후속조치에서조차 '계급'이 존재한다는 씁쓸함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크고 작은 의료사고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자괴감으로 번진다.

안타깝지만 이 자괴감은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된다. 의료사고 후 조치에서 한국은 매우 취약한 나라다. 뉴질랜드의 경우 '의료과실' 개념이 없다. 따라서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 사회보험으로 피해 보상을 해준다. 또 의료진이 개별적으로 환자와 소통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본은 의사회가 소속 의사들로부터 회비를 걷어 보험에 가입한다. 회원인 의사가 손해배상청구를 받으면 우선 보험처리를 한 뒤 과실 여부를 따진다.

한국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있긴 하다. 그러나 피해자의 중재신청에 의료진이 응하지 않으면 그대로 끝이다. 강제성이 없다. 피해자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 결과 2016년 1665건 신청 중 병원이 응한 건 631건(37.9%)에 불과하고 이 중 합의된 게 376건(59.6%)밖에 되지 않는다.

소송도 녹록하지 않다. 1심만 2~3년이 걸린다. 상고심까지 5년은 기본이다. 수백만원 변호사 비용까지 치르면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다. 치료비 부담이 큰 것도 문제지만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훼손됐을 때 충격은 비할 게 없다. 의료사고 후 실효성 있는 보상과 치료 방안 마련이야말로 문재인 케어의 완성이지 않을까.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s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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