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경험과 조언을 듣는다] <4>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한반도 평화 그림 윤곽만 잡아
북미에 색 칠하는 역할 넘겨야
북핵 관련 사안은 북미 양자가
평화협정 체결은 남ㆍ북ㆍ미ㆍ중이
동북아 안보는 6자가 참여해야
김연철 신임 통일연구원장이 18일 반포동 통일연구원 집무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협상은 상대가 있는 것이니만큼,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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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ㆍ북미 정상회담은 ‘팀 추월’ 경기로 이해하면 된다. 두 회담이 모두 잘 돼야 비로소 성과가 난다는 이유에서다.”
김연철 신임 통일연구원장은 18일 서울 반포동 통일연구원에서 가진 본보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 성격을 이렇게 규정했다. 빙상 경기의 한 종목인 팀 추월은 3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출발해, 가장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 기록을 팀 전체 기록으로 인정하는 방식의 토너먼트 경기다. 팀 추월 경기를 예로 든 건, 선행 회담 격인 남북 정상회담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남북 회담 경험을 쌓은 그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게 더욱 중요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그림의 윤곽만 잡고 색을 칠하는 역할을 북미로 넘기지만, 한반도 평화라는 그림의 완성을 위한 일이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86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미소 간 회담을 예로 들었다. 그는 “두 정상은 아무런 합의문 없이 빈손으로 돌아갔고 양국 모두 실망했다. 그러나 역사는 모든 사안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했던 이 회담을 냉전 종식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주저 없이 “압축”이라고 답했다. “남ㆍ북ㆍ미가 단계적ㆍ점진적 협상보다 압축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그러나 자칫 속도에 매몰돼 근본적인 상처 치유에 소홀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핵 문제는 결국 냉전이라는 관계의 산물”이라면서 “핵 포기 역시 관계의 변화에서 나오는 결과물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남북 간 상호 이해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남한 내부에서도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를 좁히는 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문점이 회담 장소로 낙점된 것은 그래서 고무적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원장은 “판문점 회담이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실용적인 회담이라는 점에서 남북 정상이 자주 대화의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대화의 동력을 살려나가면서 불신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또 “휴전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이 평화의 상징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의미도 물론 중요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종전 선언’에 대해서는 “‘정전 체제를 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의 법적 근거가 상실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급격한 변화가 야기하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보다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구도가 긴 시간을 거쳐 비로소 끝난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남ㆍ북ㆍ미 삼각대화가 “현재까진 잘 굴러가고 있다”며 “앞으로는 의제 별로 다양한 다자회담을 구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핵 관련 사안은 북미 양자가, 평화협정 체결은 남ㆍ북ㆍ미ㆍ중 4자가, 동북아 안보협력이나 경제협력 등은 6자가 참여하는 식의 논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반도 통일정책을 연구하는 유일한 국책연구기관장을 지난 13일부터 맡게 된 그는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인 만큼 “보수 정권을 거치며 부실해진 북한 기초 연구를 재정비하고, 당장 실행가능한 실용적인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김연철은
국가 통일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통일연구원 제16대 원장으로 4월 13일 취임했다. 청와대 안보실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문재인 정부 한반도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꼽힌다. 참여정부 때인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내며 남북 회담 경험을 쌓았다. 2010년부터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를 맡았고, 현재 휴직 상태다. 남북 관계 전반을 다룬 ‘70년의 대화’를 최근 펴냈다. 1964년 강원 동해시에서 태어났으며, ‘앞서 깨닫는다’는 뜻의 ‘두타’라는 호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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