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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씨줄날줄] 은밀한 대화/최광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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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미국 망명에서 돌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는 동교동 자택 연금을 당했다. 그것도 괴로운데 안기부 요원들이 집 주위에서 고성능 기기로 모든 대화를 엿들었다. 이희호 여사는 안기부의 도·감청을 피하기 위해 “집안에서 늘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중요한 이야기는 필담으로 했어요. 책받침만 한 판에다 글씨를 쓰고 지웠지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이희호 평전)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수시로 다양한 메신저를 사용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옛날 얘기다.
서울신문

일반인들이야 사사로운 대화용으로 메신저를 이용하지만 정치인들의 메신저 사용은 때로는 그 내용과 형식이 논란이 돼 정치 쟁점이 되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이메일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정부의 공식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미 연방기록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개인 이메일을 사용할 경우 정부 서버에 기록을 보존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힐러리는 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 힐러리의 이메일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텔레그램, 시그널 등 생소한 메신저들이 속속 등장해 정치인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여권 핵심 인사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과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드루킹 김동원씨가 텔레그램과 시그널을 이용해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시그널은 미국 국가안보국 감청프로그램을 세상에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쓰는 메신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최고 보안을 자랑하는 미국 메신저다. 텔레그램은 얼마 전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자신의 수행비서와 은밀한 내용을 주고받을 때 사용한 메신저다. 이들 두 메신저 모두 전송 내용이 암호화되어 있어 대화 내용의 흔적이 남지 않아 정보 보호에 탁월하다.

사실 우리 정치인들이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를 사용하게 된 배경은 박근혜 정부가 유언비어를 단속한다는 이유로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대한 검열의지를 나타내면서다. 물론 박 정부 이전인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의원 등은 일찍이 도ㆍ감청을 우려해 미국의 카카오톡인 바이버를 이용했다.

보통 사람들은 메신저로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하지만 보안성이 높은 메신저를 선호하는 정치인들은 많은 사람과 공감하는 소통 수단이 아니라 은밀하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몰래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정보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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