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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한국기업 노리는 해외 투기자본… 주가 흔든뒤 이익만 챙겨 ‘먹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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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현대차 지배구조개편 요구

1% 지분으로 노골적 경영 간섭… 삼성 합병 반대때 수천억 수익

현대차, 더캐피털 지분 확대에 “오랜 파트너… 엘리엇과 성격 달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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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 흔들기에 나서면서 재계의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영향력을 이용해 주가를 띄운 뒤 시세차익을 거두고 손을 터는 행태를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엇은 23일 오후 늦게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네 가지 요구사항을 밝혔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 후 분할해 지주사 체제를 만들 것 △과다잉여금을 줄이고 자사주를 소각할 것 △배당지급률을 순이익의 40∼50%로 높일 것 △외국인 사외이사 3명을 추가 선임할 것 등이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합병 요구는 두 기업 주식을 모두 가진 엘리엇이 합병으로 이익을 얻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현이다. 현대차가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현대글로비스의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데 엘리엇은 글로비스 지분이 없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식 가치는 모두 합쳐 약 10억 달러(약 1조800억 원)로 지분이 약 1.4% 수준이다. 엘리엇이 현대차에 새로운 요구를 내놓자 엘리엇의 기대대로 현대모비스 주가는 전날보다 0.62% 오른 24만5000원에, 현대글로비스는 0.85% 내린 17만5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번 사례 이전부터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이 운영하는 엘리엇은 1977년 설립한 이후 350억 달러(약 37조6800억 원)를 운용하면서 보유 주식을 무기로 기업 경영에 적극 간섭해 배당을 늘리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주가를 띄우도록 위협해 왔다. 지분이 미미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를 결집해 영향력을 극대화해왔다.

현대차의 3대 주주인 미국계 투자사 더캐피털그룹이 이달 10일 현대차 지분을 7.33%에서 7.4%로 높였다고 공시한 이후 증권시장에서 엘리엇과의 교감설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장기 투자자인 더캐피털은 현대차의 오랜 파트너로 엘리엇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 주주총회 등에서 더캐피털이 반기를 든 전례가 없다”고 일축했다.

외신조차 엘리엇의 행보에 부정적이다. 로이터는 24일(현지 시간) “현대차에 대한 엘리엇의 압박이 과도하다. 전통적인 협상 전략이다. 엘리엇의 지주회사 체제 요구는 한국의 금산분리법에 위배된다”고 보도했다. 현대차도 “지주사 체제는 미래 대규모 인수합병(M&A)을 어렵게 만든다”며 그룹의 미래 전략에 맞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엘리엇은 2015년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이익 극대화를 추구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수천억 원대의 투자 수익을 올린 뒤 손을 털고 나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엘리엇은 해외에서도 기업과 국가의 취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돈을 빼내는 행태로 악명을 떨쳐왔다. 2001년 아르헨티나를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에 빠뜨린 장본인으로도 주목받았다. 2004년 미국 P&G의 독일 웰라 인수 당시에도 ‘소액주주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소송전을 벌여 매입가를 12% 끌어올렸다. 2013년엔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BMC 지분 9%를 매집한 뒤 경영진을 압박해 회사를 사모펀드에 넘겼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헤지펀드는 회사 주식을 산 뒤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안 들어줄 경우 여러 행동으로 압박해 단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는 나머지 장기 투자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택 nabi@donga.com·서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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