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
인터넷 뉴스에서 검색한 예문들이다. 밑줄 친 부분을 수정해 보자.
제작진의 유도심문에 걸려들어 긍정적으로 답했다.
녹취하여 자기 유리한 쪽으로 유도 심문 했다.
기자가 유도심문을 통해 저를 엮으려고 하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피의자는 유도 심문을 주의하여야 한다.
마치 유도심문 같았다.
‘유도 신문’이 맞는 표기다. 몇 가지 질문이 생겨야 한다. 쉬운 질문부터 풀어보자. 왜 ‘신문’이 옳은가? 사전에 풀이된 의미부터 보자.
신문(訊問): 알고 있는 사실을 캐어물음.
이 의미를 ‘유도 신문’에 적용해 보자. ‘유도 신문’은 질문하는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묻는 것이니 이 단어가 ‘유도 신문’으로 적어야 함은 분명하다. 앞서 본 모든 예문은 ‘이미 아는 것을 이끌어내는 상황’에 쓰인 말이다. ‘심문(審問)’에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묻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유도 심문’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적는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별 의심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우리의 발음 원리가 관여한다. ‘신문’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신문(新聞)’이다. 말 그대로 소식을 전하는 정기 간행물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신문(新聞)’ 역시 ‘신문(訊問)’처럼 [심문(×)]이라 발음하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렇다. 왜 그럴까? 자음동화라는 현상을 생각해 보자. 입의 입장에서는 비슷한 발음을 연속해서 내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국물’을 [궁물]이라 발음해 경제성을 추구한다. 발음을 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규칙이다.
그런데 입의 입장에서는 이 규칙으로 발음을 더 같아지게 하고픈 욕심이 있다. 그것이 훨씬 더 발음하기 편하니까. ‘신문’에서 ‘ㄴㅁ’을 ‘ㅁㅁ’으로 연이어 내는 것은 이런 욕심 때문이다. 일상 대화처럼 빠른 속도로 말을 주고받을 때는 이런 일이 훨씬 더 잦다. 예들을 몇 개 보자.
문법[문뻡]([뭄뻡(×)]), 꽃밭[꼳빧]([꼽빧(×)])
[문뻡], [꼳빧]이 올바른 발음이지만 뒤에 오는 자음 ‘ㅂ’을 더 닮게 해 ‘ㅁ, ㅂ’으로 바꿔 발음하는 경우다. 이렇게 자음동화를 지나치게 적용하여 발음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감기[감ː기]([강ː기](×)), 옷감[옫깜]([옥깜](×)),
꽃길[꼳낄]([꼭낄](×)), 젖먹이[전머기]([점머기](×))
물론 표준 발음법에서는 허용하지 않는다. 귀의 입장에서는 알아듣기가 곤란해지니까.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신문’과 ‘심문(審問)’을 구별해 발음하려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이 원래 ‘ㄴ’으로 끝나는 단어인 ‘신문(訊問)’에까지 확대 적용된 결과가 ‘유도 심문’이다. ‘심문(審問)’과 ‘신문(訊問)’에 든 미묘한 의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언어는 언제나 소리와 의미의 관계로 묶여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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