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정일을 닮아 늦은 밤까지 활동하는 야행성으로 알려진 김정은이다. 노동신문 1면에 실린 대사관 방문 사진의 김정은은 중국대사와 나란히 앉아 손을 모은 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잠이 덜 깬 듯 얼굴은 다소 푸석하고 부어 보인다. 김정은은 중국대사에게 “후속 조치에 최대의 성의를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저녁엔 부상자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의사용 흰색 가운을 걸치고 환자 손을 붙잡은 채 위로하기도 했다. 순발력 있고 배려 깊은 지도자의 모습을 세련되게 연출한 것이다.
▷이번 사고는 베이징 여행사 직원들을 비롯한 중국인들을 태운 버스가 개성 관광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에 발생했다. 버스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보수를 위해 통제 중이던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피해 비포장도로를 폭우 속에 무리하게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 연쇄 정상회담으로 대외관계의 극적 변화를 노리는 김정은으로선 자칫 중국 내 반북(反北) 정서까지 불러올 돌발 악재를 맞아 신속한 수습으로 이미지 개선에 나선 것이다.
▷김정은의 행보는 자국에서 일어난 외국인 인명사고에 지도자라면 응당 취할 지극히 정상적인 조치다. 한데도 낯설고 어색하게만 보이는 이유는 뭘까. 북한 특권 엘리트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엔 늘 ‘사고를 빙자한 암살 아니냐’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더욱이 이번 사고는 2004년 김정일 암살 시도설이 나돌았던 용천역 폭발사고와 같은 날 발생해 벌써부터 온갖 상상력이 가미된 음모론이 나올 기세다. 자폐 수준의 폐쇄국가에선 정상(正常)도 늘 괴상하게 비칠 뿐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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