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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광화문에서/윤완준]중국식 개혁 배우라는 中, 중국 의존도 낮추려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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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우리는 미국과 싸우는 게 아니라 중국과 싸우고 있다.”

지난해 말 북한을 방문했던 한 중국인 학자는 북한 관계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대북 제재에 동참해 뺨을 때린 ‘형님’ 중국에 대한 ‘동생’ 북한의 불신은 이처럼 극에 달했다. 그랬던 북-중 관계가 불과 수개월 만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짝 방중을 계기로 극적으로 회복될 줄 중국도 몰랐을 것이다.

이참에 중국은 북한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목소리를 높인다. 샤리핑(夏立平) 상하이 퉁지(同濟)대 국제공공사무연구원장은 한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김정은의 중요한 카드”라고 말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 전에 김정은은 중국에 반드시 와야 했다. 중국은 남북, 북-미 회담에서 김정은의 중요한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중국 매체들은 중국이라는 ‘대국’이 뒤에 버티고 있어야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안전 보장을 얻어낼 수 있다며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에게 특별히 바라는 건 ‘중국 배우기’다. 얼마 전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북한에서 리수용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치국이정 경험에 대한 교류를 증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치국이정(治國理政·이치와 정치로 나라를 다스린다)은 시 주석의 통치이념이다. 리수용은 “중국 당의 치당치국 경험과 방식을 배우고 싶다”고 화답했다. 쑹 부장이 이어 만난 김정은은 “방중 기간에 중국이 이룩한 감탄할 만한 발전 성과를 직접 봤다”며 “중국 당의 경험을 본보기로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 공개한 내용이다.

시 주석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중국식 개혁개방이 사회주의 북한이 경제 발전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모델이라고 김정은을 설득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중국식 개방에 관심이 많았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1978년 덩샤오핑의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뒤 1980년대 김일성도 중국식 개방에 관심이 많았다”며 “당시 북한에서 개방 관련법들이 오히려 중국보다 더 많이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북한이 2013년부터 추진 중인 경제개발구, 2002년 시장경제 원리를 일부 수용한 7·1경제관리개선 조치 모두 중국을 롤모델로 삼았다.

김정은에게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대외 개방을 하고도 일당독재와 강력한 사회통제를 유지하는 절대권력의 시진핑식 통치일 것이다. 북한이 중국을 따라가면,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고 북-미 관계가 개선돼 수교를 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은 중국 없이는 무너질 것 같았던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를 크게 낮출 것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북한에 열린 큰 시장을 한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이 점령하면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싸우고 있다”는 북한의 불신은 쉽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북-중 관계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앞으로 중국에만 무역과 안보를 의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려 할 것이라고 봤다. 북한에 “중국을 배우라”고 하는 중국의 속내에 ‘한반도에서 시작된 뜻밖의 반전이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초조함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미국과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어떤 카드를 던질지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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