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모의재판 ‘시민평화법정’
“한국, 책임 인정·배상해야” 재판부, 원고 승소 판결
피해자 증언에 방청석 ‘눈물’…“고참이 민간인 쏴 죽였다” 한국군 목격자 영상도 공개
“참전군 대부분 학살과 무관 정확한 조사 필요” 변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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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이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
22일 서울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재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이같이 선고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시민평화법정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황을 가정해 열린 일종의 모의재판이다.
앞서 전날 열린 변론에서는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마을 출신인 응우옌 티 탄(58) 등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직접 참석해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응우옌은 1968년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위치한 퐁니·퐁넛 마을에서 한국군이 쏜 총에 맞은 피해자이자 이 사건의 원고다. 퐁니·퐁넛 마을에서는 주민 70여명이 한국군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공호에서 사람이 나오는 대로 한국 군인이 총을 쐈습니다. 저희 가족은 그 총알을 그냥 다 맞았습니다.” 눈물을 닦던 응우옌은 50년 전 자신의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한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한국 군인이 집에 불을 지르려 했습니다. 아기를 안고 있던 이모가 손을 들어 말리려 했는데 한국 군인이 이모의 배를 칼로 찔렀습니다. 한국 정부와 참전군인들이 이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좋겠습니다.” 응우옌의 말을 통역해주던 통역사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방청석의 시민들도 함께 울었다.
당시 여덟 살이었던 응우옌은 한국군이 집에 쳐들어와 비무장 상태였던 자신과 가족들에게 총을 쏜 기억을 생생히 증언했다. “다리에 총을 맞은 오빠는 방공호 앞에서 쓰러졌고, 저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니 배에서 창자가 튀어나왔습니다. 한국군이 그때 저를 죽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이날 법정에서는 증거로 제출된 한국 참전군인의 증언 영상도 공개됐다. 당시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소속이었던 ㄱ씨(72)는 “선임병이 할아버지 한 분을 총으로 쏴 즉사시켰다”며 “적과 교전 중에 일어난 사고도 아니고 멀쩡한 민간인을 죽였으니 양심의 가책이 컸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사과하는 것이 참군인의 정신”이라고 고백했다.
한국 정부 측 대리를 맡은 박진석 변호사는 “32만명의 참전군인 중 대부분은 학살과 무관한 사람일 것”이라며 “어떤 부대가 학살을 했는지 정확한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석태 변호사·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구성된 재판부는 심리 끝에 한국 정부가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진상조사도 권고했다. 김 전 대법관은 선고문에서 “이 사건은 (전쟁 중) 의도치 않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아니라 의도된 집단학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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