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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폐사 ‘바다거북’의 뱃속에선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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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가려진 ‘바다거북의 삶’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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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심하게 꼬여 있네요. 장 중첩입니다. 소화를 못 시키게 된 것이 직접적인 사인으로 보여요.” “비닐 때문에 죽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폐사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지난 17일 오전 붉은바다거북 폐사체의 소화기관을 확인하던 수의사들이 한숨을 내쉬며 보인 반응이다. 보호대상 해양생물인 바다거북의 사인을 규명하고, 보다 정밀한 보호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연구기관과 대학 등이 모여 바다거북 폐사체를 확인한 결과 거북의 소화기관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이 만들고, 바다에 버린 이물질 가운데 그물, 낚싯줄, 비닐 등 바다거북이 소화시킬 수 없는 폐기물들은 거북의 소장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극우단체가 북한으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비닐 재질의 전단지는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 모습 그대로 소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검실에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생태원, 충북대, 전남대, 세계자연기금(WWF),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 등의 해양생물 연구자, 수의사, 사육사 등 10여명이 2016년과 2017년 국내 연안에서 발견된 거북의 폐사체 중 4구를 해부하고,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 모여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전 회의 결과 해양생물자원관은 앞으로 실시될 바다거북 부검의 총괄 관리와 먹이원 분석, 미생물 확인, 부검 이후 남는 거북 폐사체와 골격 등의 활용을, 생태원은 부검실 제공과 사인 규명을, 전남대는 중금속 중독 여부 확인, 충북대는 기생충 감염 여부 조사 등을 맡아 연구하는 방향이 결정됐다. WWF는 바다거북 보호의 필요성과 해양 오염 방지를 위한 캠페인 등을 맡기로 했다. 바다거북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해양생물자원관 김일훈 박사는 “국내에서는 바다거북은 물론 보호대상인 해양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연구기관과 관련 기관이 모여 협업하는 것이 처음”이라며 “바다거북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첫 연구가 시작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 설화 속의 주인공, 쓰레기에 죽어가다

이들 연구자와 수의사, 사육사 등이 유독 바다거북의 폐사체를 수거하고, 부검하는 것은 아직 국내에선 바다거북의 생태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바다거북의 먹이원, 이동경로, 폐사 이유 등 대부분이 아직 제대로 규명돼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바다거북이 국내 연안에서 폐사하는지조차 추정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바다거북 연구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상황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제주도와 동해안과 남해의 여수 등 지역에서 바다거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부검 대상이 된 바다거북 폐사체도 강원 속초, 부산 기장, 포항 송도, 강원 고성 등에서 발견된 개체들이다.

바다거북은 다양한 민담과 설화, 동화 속에 등장하는 친숙한 동물이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에겐 국내 바다 어디에 서식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해양동물이기도 하다. 바다거북이 국내 연안에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 이들도 국내에는 잠시 거쳐가는 정도일 뿐 일본과 대만 등 한반도보다 더 따뜻한 지역에 사는 동물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해양생물자원관이 2016년부터 시작한 바다거북 생태와 이동경로 추적 연구에 따르면 바다거북은 12월에서 2월 사이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겨울철을 제외하곤 연중 국내 바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동물이다. 구조와 치료 건수가 계속해서 증가한다.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발견된 바다거북 폐사체가 180여건인데, 바다거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고 홍보한 이후 지난해부터 들어온 폐사체만 20여건에 달한다.

해양생물자원관 김민섭 박사는 “동해안과 남해안에서 바다거북이 주로 발견되는 지역의 주민센터, 경찰서 등에 직접 찾아가 바다거북 연구에 대해 알린 결과 점점 더 많은 바다거북 구조 신고와 폐사체 발견 통보가 관련 기관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왕의 신하라는 이미지를 가진 덕분인지 호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죽은 채 발견되는 경우도 그냥 바다에 버리기보다는 곱게 매장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견되는 폐사체에서는 소화기관에서 비닐 등 인간이 버린 폐기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날 실시된 부검에서도 첫 개체부터 다양한 이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바다가 플라스틱과 비닐 등 분해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폐기물들로 오염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폐기물이 바다거북을 포함한 대형 해양생물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요소임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실시한 9건의 부검에서도 대부분의 바다거북 폐사체에서 플라스틱, 비닐, 철망, 코르크 등의 이물질이 확인됐다.

전 세계 7종 중 6종이 멸종 위기

현재 바다거북 연구 ‘걸음마 수준’

먹이·이동 경로·폐사 원인 추정만


경향신문

전 세계 바다에 서식하는 바다거북은 모두 7종이며 6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돼 있다. 국내에는 장수거북, 푸른바다거북, 붉은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등 4종이 나타나며 기후변화에 따라 더 많은 종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먹이는 대체로 해조류, 조개, 해파리 등이다. 이날 부검한 바다거북에서도 아직 소화되지 않은 해조류와 조개 등이 확인됐다. 소화기관을 확인해 먹이원을 분석하면 바다거북이 국내 연안의 특정 지역에서 왜 많이 출몰하는지를 추정할 수 있고, 보다 체계적인 보호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 바다거북에 대한 체계적 연구 첫발

이날 실시된 바다거북 부검은 또 기존의 부검이 단순한 사인 규명 목적이었던 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바다거북 연구가 가능해진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해양생물자원관이 2016년부터 인공위성 추적을 통한 이동경로 연구를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바다거북이 한반도의 바다에서 어떤 먹이를 먹고, 어떻게 이동해 번식하며, 어떤 이유로 죽어가는지 등 거북의 전 생애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동해·남해안 폐사체 부검해보니

그물·비닐 등 소화 못시켜 그대로


거북 폐사체를 부검하는 것에 생각보다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며 긴 시간과 중노동이라고 할 만큼 노동 강도가 높다는 점도 여러 연구기관이 협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등갑이 붙어 있는 상태의 바다거북 성체는 대체로 100㎏ 이상의 무게이며 성인 남성 두세 명이 같이 힘을 써야 해부를 하고 뒤집는 것이 가능하다. 바다거북을 해부하기 위해선 우선 폐사체를 발견한 곳에서 연구기관으로 운반해야 하며, 운반 후 냉동고에서 보관하다가 해부 전날 꺼내 해동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배딱지를 절개하기 전에는 거북의 무게, 길이 등 신체 치수를 측정하고, 부검대로 옮겨 등갑에 비해 절개가 쉬운 배딱지를 메스로 절개해 내부 기관들을 적출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연구자, 수의사 등이 참여한 바다거북 부검은 4구 전체의 내부 기관을 적출해 사인을 밝히고, 이물질을 꺼내는 등의 작업에 꼬박 하루가 소요됐다. 한두 기관에서만 참여해 부검을 할 때는 하루에 부검할 수 있는 폐사체 수가 현재 연구방식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해양생물자원관에는 부검을 기다리는 바다거북 폐사체가 10구 더 있으며 계속해서 발견 신고가 들어오고 있다.

국내서도 체계적인 연구 시작

교육 활용·생태 캠페인 등 진행


해양생물자원관은 부검을 마친 바다거북 폐사체 중 상태가 양호한 개체는 박제로 만들어 교육, 전시용으로 활용하고, 다른 개체들은 골격 표본으로 만들어 역시 교육, 전시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이날 부검에 참여한 연구, 전시기관들은 앞으로 1~2개월에 한 번씩 모여 바다거북 부검을 실시하고, 부검 결과를 국가데이터베이스에 남겨 체계적인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김일훈 박사는 “앞으로 바다거북의 생태 연구를 지속하는 동시에 폐사체 부검으로 먹이원과 위협 요인 등을 분석해 서식지 복원 및 보호정책에 반영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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