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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시선]경남에 계신 부모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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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날 아침, 온 마을이 부산스럽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오늘이 선거날이라는 안내방송이 메아리처럼 돌고 돈다. 아침나절, 면 소재지 앞이 북적거리기로는 이날만 한 날이 없다. 투표소로 쓰이는 학교 앞으로는 줄줄이 경운기가 늘어서고, 구부정한 허리로 유모차 닮은 밀차를 끌고 나온 어르신들도 둘씩 셋씩 투표소로 걷는다. 자리에 몸져누워 도통 얼굴 보기 힘들었던 할매, 할배도 누구 놉을 얻어서라도 몸을 이끌고 투표소로 나선다.

경향신문

시골에 내려와서 몇 번, 투표 참관인을 했다. 참관인을 하는 사람들이건, 일을 하러 온 공무원이건, 나처럼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한둘을 빼고는 서로 모르는 사이가 없다. 투표소에 사람들이 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인사를 하느라 이야기꽃이 피고, 추임새처럼 여즉 죽지 않고 내 또 왔네 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였다. 할아버지 한 분이 오시는데 한눈에 봐도, 아픈 몸으로 어렵게 어렵게 나오신 걸음이었다. 여러 사람이 인사를 한다. “아, 서울 있는 큰자식이 날마다 전화해 갖고 떠들어대니, 귀가 쟁쟁거리. 진주 나갔는 딸내미도 찾아와서는 뭐시라고 해 쌓고. 아, 까딱하믄 사우한테 영감탱이 소리 듣게 생겼더만. 자식 새끼덜이 돌아가믄서 빌고 가. 그래 나왔어. 찍을 기 없어가 안 나올라다가. 저거들 사는기 확 달라진다 카대. 손주 새끼들 밥 먹인다고 욕본 거 내 알아.” 다음 선거날에도 그분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선거를 앞두고서도 어르신들이 자식들 이야기 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다. 영 간지럽구로 살살거린다고도 하고, 손주 새끼 앞세워 가지고 떼를 쓴다고도 했다. 살림살이 어렵다는 이야기부터 해서, 자식들이 봄꽃에 달라붙어 웽웽거리는 벌들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을 은근스레 자랑하듯 말씀하셨다.

이제 다시 돌아오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목요일에는 경남도지사 후보의 출마 선언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오보가 낭자했던 경남도지사 출마 선언 날, 하루 종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표독스러운 짐승처럼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저지르는 것 같았다. 예정되어 있던 장소는 경남 서부청사였다. 기사에는 따로 나와 있지 않았는데, 그 자리는 지금은 도청 서부청사이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진주의료원이 있던 자리였다. 경남에 단 두 개였던 지방의료원 가운데 하나, 더 가난한 늙은 할매, 할배들이 찾던 병원. 홍준표 도지사가 문을 닫아 버렸고, 김태호 도지사는 위치를 한참 외진 곳으로 옮겨 버렸던 병원. 병원이 문을 닫으며 쫓겨나야만 했던 환자 가운데 수십 명이 1년도 안 되어 죽어간 기록이 남겨진 곳. 하지만, 예정된 출마 선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사이 새로운 소식들이 쏟아지고, 마음에는 부아가 치미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선거를 위해서라면 거짓말이건 무엇이건, 온갖 몹쓸 짓도 마다 않는다는 것만 새겨두었다.

아버지는 작년에 하동읍으로 오셨다. 원래 고향이 경남이셨던 아버지는 오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경남으로 내려오셨다. 서울 사는 동안 아버지 투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지난 대선 때에야 처음으로 사정하듯 이야기를 했다. 물론 대꾸는 없으셨지만. 지방선거 날짜가 다가오고, 후보자들이 하나둘 결정되고 있다. 경남에 오셨으니 이곳 후보자들 하나하나가 그동안 하동에서, 경남에서 무슨 일을 해 왔는지 찬찬히 말씀드릴 참이다. 식구들끼리 정치 이야기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지난 선거 이후로 조금씩 하기 시작하니 무심한 듯하시면서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들으신다. 당장 병원 가는 것도 달라지고, 손주들 학교 다니는 것도 달라지고, 뭐 하나 허투루 할 얘기가 없으니. 혹여 경남에 부모님이 계신다면,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웽웽거리는 꿀벌처럼 정치 얘기, 선거 얘기 나누시기를, 부디.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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