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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기자수첩] 방황하는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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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가 숨죽여 울고 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파문으로 들끓는 여론 곳곳에는 그의 외모를 비난하는 글이 넘친다. '저 얼굴에 돈 없으면 누가 데려갈까' '잘못된 점이 있으니 얼굴도 함께 욕먹는 것' 등의 표현은, 행위 비판에 외모 비난을 엮어내는 놀이처럼 이어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미적 자존감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나와 같은 신체적 특징으로 놀림 받을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아픔이 은밀할수록, 세상을 향해 자중하라고 외치기도 힘들다.

탈모를 겪고 있지만, 꾸준한 약 복용으로 모발이 풍성한 A씨는 아직도 '국정농단'의 조연 차은택 씨가 언론과 여론에 당한 놀림을 잊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행위 자체가 아닌 외모로 조리돌림 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나의 미적 자존감이 이런 식으로 상처받을까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외모가 상대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을 여성들의 마음 역시 상처받기는 마찬가지다.

유용하지만 눈이 없어 위험한 물건이 칼이다. 무를 자를 땐 무를 썰고, 고깃국을 끓일 땐 고기를 향해야 한다. 눈 감은 사람의 기분 따라 휘둘러질 뿐이라면,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흉기에 불과하다.

사람의 혀 역시 칼과 같아서, 공인의 잘못을 매섭게 꾸짖어 일탈과 범죄의 싹을 자를 수 있다. 피부를 뚫지 않고 심장을 찌르기도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려 분투하는 이웃들의 마음을 베기도 쉽다.

단시간에 선호되지 않는 외모를 가진 여성, 머리숱 적은 남성,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는 시민 모두 '걸리기만 하면 참았던 조롱을 퍼부어도 되는 대상'에 머물 뿐이라면, 이 사회의 맨얼굴은 과연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가.

방황하는 칼날에 묻어있는 아픔은 정말 조현민만의 것인가.

이범종 기자 joker@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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