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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지휘자 쿠렌치스, 그의 파격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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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파격’은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의 화두다. 클래식의 중심을 서유럽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중심부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러시아 페름(Perm)의 지휘자 한 명이 ‘파격’을 들고 나와 세계적 화제를 뿌리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300km 이상 떨어진 페름에서 ‘무지카 에테르나’를 이끌고 있는 테오도르 쿠렌치스다. 올해 46세, 원래 그리스 태생이다. 그가 2004년 러시아 전역의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창단한 무지카 에테르나는 현재 페름 오페라극장의 상주단체다.

쿠렌치스는 일단 외모부터 눈에 띈다. 치렁한 머리카락에 블랙으로 매치한 패션은 아르마니 모델을 뺨친다. 화려한 장신구도 빠지지 않는다. 이렇듯이 외모부터 독특한 그는 음악에서도 통념을 여지없이 뒤흔든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악보에 애초에 등장시키지도 않았던 류트(lute·기타와 비슷한 현악기)가 갑자기 연주되는가 하면, <레퀴엠>에서는 느닷없이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는 이미 짜여진 원작의 질서를 상당 부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쾌감의 음악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청중이 그의 파격에 환호한다. ‘변방의 지휘자’ 쿠렌치스는 최근 10년간 가장 빠른 상승세를 보이며 팬덤을 확보했다. 그는 이제 중심을 넘본다. 오는 가을부터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이 합병돼 새롭게 출범하는 SWR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한다. 독일 서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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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 인기는 한국에도 상륙했다. 그와 무지카 에테르나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지난 2월 국내 출시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기에 힙입어 최근 두 장의 앨범이 또 나왔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트라빈스키의 ‘결혼’을 연주한 음반, 바로크 시대 프랑스의 작곡가 라모의 음악을 연주한 <빛의 소리>라는 음반이다. 당연히 쿠렌치스를 둘러싼 논쟁도 함께 상륙했다. 국내에서도 그의 ‘파격’을 둘러싼 두가지 시선이 교차한다.

음악컬럼니스트 류태형은 “쿠렌치스는 온 힘을 다해 휘저으면서, 에너지 충만한 음악을 쏟아놓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쿠렌치스는 앞세대 거장들의 자장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의 음악 해석은 자극적이다. 그가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다보면 아찔한 느낌의 서커스를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곡의 기저를 무너뜨리진 않는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에서 그는 분명히 과장돼 있지만, 곡 전체의 구성을 무너뜨렸다고 볼 수는 없다. 커다란 구조 안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펼친다. 잡초 같은 기질, 이글거리는 마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그는 음향을 중시하는 지휘자다. 이런 요소들이 어울려 젊은 음악팬들에게까지 어필하고 있다. 속히 한국에 내한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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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음악컬럼니스트 이준형은 “논쟁적 지휘자임에 분명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라며 신중론을 폈다. “쿠렌치스는 (벨기에 태생의 지휘자) 르네 야콥스의 최종 진화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당대의 악기로, 당대의 연주를 복원해낸다는 시대적 요구가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르네 야콥스 같은 지휘자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야콥스는 (앞 세대의 당대연주에 비해) 음악을 한층 더 재미있게, 청중을 즐겁게 해주는 데 몰입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최후의 선’이 있었다. 반면에 쿠렌치스는 이 선을 거침없이 넘어갔다. 원작 자체를 파괴하면서 휘몰아치는 음악을 들려준다. 그는 러시아에서 ‘악단의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그런 음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통할까? 독일의 음악적 전통이 쿠렌치스를 과연 받아들일까? 게다가 노동조합이 발달한 독일의 악단에서 쿠렌치스의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통할까? 앞으로 수년간 그를 지켜봐야 할 이유다.”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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