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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김일성 회고록' 소지했다가…병무청 직원 국가보안법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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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단체 활동, 북한자료 678건 소지

1, 2심 무죄 이어 대법원도 무죄 판결

"단순 소지, 이적 행위로 볼 수 없어"

중앙일보

김일성 주체사상을 정리한 서적.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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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 ‘주체사상총서’ ‘세기와 더불어’ 등 북한 책자를 소지한 이유로 기소된 병무청 직원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적표현물을 단순 소지하거나 게시했더라도 ‘이적 행위’가 증명되지 않는 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의 태도를 재확인한 판결이다.

대법원 제1부(재판장 이기택)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ㆍ고무) 혐의로 기소된 부산지방병무청 직원 강모(44)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22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상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부산지방병무청 8급 공무원이던 강씨는 2009년 12월~2010년 11월 회원으로 활동하던 ‘통일을 여는 사람들(통일사)’ 홈페이지에 북한 외무성 성명 등 15건을 올린 혐의로 지난 2012년 3월 기소됐다. 그가 올린 외무성 성명은 북한의 핵무장이 핵 억제력 차원에서 정당하며, 핵무장의 근본 원인이 미국 때문이라는 내용이었다.

강씨는 또 자택과 병무청 사무실 등에서 ‘주체사상총서’와 김일성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등 북한에서 만든 서적, 음악, 영화 등 678건을 책자와 컴퓨터 파일 형태로 소지한 혐의를 받았다. 강씨의 휴대용 저장기기에선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내용의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주요 노작집’ 등 파일과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간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북한 영화 ‘당의 참된 딸’ 등 영화 파일 등이 발견됐다. 강씨는 2012년 3월 부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구속된 뒤 같은 해 5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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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경찰이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더불어'를 발간하려한 출판사를 압수수색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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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강씨가 주한미군 철수와 한ㆍ미동맹 철폐 등을 주장하고 ‘화염병 시위’ 등으로 검거된 전력이 있는 통일사에 이적표현물을 게시한 점을 문제 삼았다. 검찰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북한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게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강씨는 법정에서 “통일사는 순수한 사회단체이고 북한 관련 서적도 북한대학원 진학 준비를 위한 자료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실제 강씨는 1999년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 진학하려다 면접에서 불합격한 뒤 위탁교육 형태로 북한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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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북한을 찬양하는 홈페이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당시 서울경찰청 보안과.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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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6일 1심 재판부(부산지법)는 해당 자료들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를 게시하거나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씨가 속한 통일사는 회원이 1000명인 민간단체로 이적성향을 지닌 단체로 볼 수 없다”며 “강씨가 이제껏 북한에 동조하는 개인 의견 등을 외부에 표한 적이 없는 데다가 북한에 동조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2014년 10월 2일 “국가보안법상 찬양ㆍ고무ㆍ선전 또는 동조 행위는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데 강씨의 경우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무죄를 최종 확정하면서 강씨는 기소된 지 6년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벗게 됐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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