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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디지털스토리] "고생하는 워킹맘 보면 결혼 안하길 잘했다는 생각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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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그렇고 그런 사람과 결혼하느니 혼자가 낫죠"…결혼은 필수 아닌 선택

"출산·육아 개인 몫 아니다…공공육아 등 일·가정 양립 지원 확대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드라마를 보면서 매번 느껴요. '아! 저건 딱 내 얘기다'라고요. 집에서는 왜 결혼 안 하느냐고 구박받고, 직장에서는 노처녀라고 놀림 받고, 미혼인 게 잘못된 일인가요?"

직장인 장 모(34) 씨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밥누나)를 가슴을 치면서 본다고 한다. 서른다섯 살 미혼 여성인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장 씨는 "주변에서 '왜 시집 안 가느냐'고 수없이 물어보지만 사실 결혼은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나 같은 선택을 내리는 사람도 많아질 거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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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지쳐서, 일에 치여서, 돈에 쪼들려 연애를 멈췄다. 결혼도 미뤘다. 각종 통계에 따르면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여성들이 매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결혼을 안 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여성의 비율은 남성보다도 많다. 일과 결혼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게 아니다.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미혼 여성들은 "엄연히 내가 스스로 내린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 연애를 쉬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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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이클릭아트



"주변에서 여자는 35살이 넘으면 연애하기 더 힘들다고들 해요. 그렇다고 해서 쫓기듯 결혼하고 싶지는 않아요."

국내 유명 언론사에서 웹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배 모(33) 과장은 "드라마 <밥누나>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인 주인공의 로맨스 장면을 보면서 오랫동안 죽었던 연애 세포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배 과장은 10년 가까이 연애를 끊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결혼을 굳이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면서도 "회사와 집을 반복하며 에너지를 소진한 뒤 맞이하는 주말에는 연애는커녕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했다.

여행 스타트업 기업을 운영하는 김 모(34) 대표는 "주 중에는 사업하느라, 주말에는 여행 다니다 보니 연애나 결혼은 다른 세상 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급하게 만나서 그렇고 그런 사람과 결혼하느니 혼자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며 "주변에 기혼자가 늘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진 점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원히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미 극복했다"고 덧붙였다.

때로는 꿈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기도 한다. 최근 직장을 그만 둔 정 모(33) 씨는 "올해 안에 세무사 7급 시험에 합격하는 게 목표"라며 "내 꿈을 위해 연애와 결혼을 잠시 미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연애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내 장래에 대한 도전은 더 연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연애를 쉬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선택이다. 지난해 6월 결혼 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발적 솔로를 선택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여성은 84.2%에 달했다. 같은 항목의 남성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비율이다.

혼자되기를 자처한 이유로는 '연애 욕구가 생기지 않아서'가 33.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연애 휴식기가 필요해서'(25.2%), '솔로 생활 만족감이 커서'(23.9%) 등의 뒤를 이었다.

◇ 늦어지는 결혼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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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미루면서 결혼 시기도 자연스럽게 늦어진다. 지난해 6월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초혼 연령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1990년 24.8세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처음으로 30대로 늦어졌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6년의 경우, 30.1세까지 올랐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유 모(34) 씨는 "세상은 달라졌다"고 잘라 말한다. 유 씨는 "옛날에야 30대를 두고 노처녀라고 했지만, 요즘은 40대 정도는 돼야 하지 않느냐"며 "지금 내 나이도 결혼 시기가 지난 게 아니라 적령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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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0대에 접어든 김모 과장은 "이제는 혼자가 더 좋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시끌벅적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이혼한 친구들을 보면 차라리 내가 더 나은 건가 싶기도 하다"며 "대단한 낙이 있어야 사는 건 아니다. 홀로 공연보기, 여행 가기 등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결혼 정보회사 듀오웨드의 오미화 본부장은 "10~20년 전과 비교하면 최근에 30대 신부가 많이 늘었다"며 "예비 신부 대부분이 30대 초중반이며, 이들 스스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오 본부장은 "40대에 첫 면사포를 쓰는 여성도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 결혼 굳이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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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필수라는 인식도 옅어진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13세 이상 미혼 여성은 47.5%로 나타났다. 이는 7년 전 같은 조사에 비해 12%포인트 가량 낮아진 수치다. 절반 미만으로 떨어진 것도 2016년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남성에 비해서도 약 10%포인트 낮다.

반면에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여성은 늘고 있다. 2010년 35.6%에서 조사마다 증가해 2016년에는 46.7%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남성은 38.9%에 그쳤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뀌는 건 우리뿐만 아니라 대만이나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겪는 추세"라면서 "다만 인식이 바뀌는 속도는 우리나라가 좀 더 빠른 편이다"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육아나 가정 문제가 여성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부담감을 더 느끼는 것"이라며 "시집살이 등 사회적 관습 역시 여성이 결혼을 어렵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 교수는 "동거는 해도 결혼은 안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늘었다"며 "여성들의 자아실현 욕구가 예전보다 커졌고, 이를 포기하지 않고는 결혼 생활을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3.8%에 머문 여성 독신율은 급증할 전망이다. 연구원 측은 2020년 7.1%에 이어 2025년에는 10.5%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년 전보다 10배 가까이 느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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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냐, 결혼이냐, 한쪽만 선택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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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쌓은 경력이 육아 때문에 끊기는 것을 보니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대기업에 재직 중인 이지선(32) 씨는 "얼마 전 옆 부서 여자 과장이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서 퇴직한 것을 봤다"며 "아들이 5살인데 베이비 시터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부모님께 부탁하기도 힘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씨는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워킹맘의 경우, 해외 출장이나 주재원 선발 등 경력 쌓기에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는 일과 가정이 양립이 힘들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혼 여성 취업자 551만여 명 중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자는 절반에 가까운 255만여 명에 달한다.

특히 30대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율은 급락한다. 연령대에 따른 여성 고용률(2016년)은 25~29세에서 69.5%로 정점을 찍는다. 이전까지 남성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여성 고용률을 30대에 들어서 하락하기 시작한다. 35~39세에 기록한 56.5%는 60대 이후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고용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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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여성의 경력 단절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육아(36.5%)로 나타났다. 이어 결혼(30.3%), 임신 및 출산(29.5%), 자녀 교육(2.7%) 등이 뒤를 이었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유 모(34) 씨는 "주변에서 결혼 후 출산이나 육아 등으로 고생하는 걸 보고 결혼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력 단절을 이유로 결혼에 망설이는 여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공공 보육이나 탁아소 등 나라에서 워킹맘을 돕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육아나 출산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종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일·가정 양립 정책 추진 현황과 개선 방향' 보고서를 통해 "정책의 부분적인 수정을 통해서는 출산율 상승이나 경력 단절 방지 등의 궁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급여 수준 인상 등의 조치가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위원은 이어 "육아 휴직 급여 인상과 배우자 출산 휴가 기간 확대 등의 제도를 통해 일과 가정 양립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포그래픽=장미화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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