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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녹 안스는 스테인리스수저, 금수저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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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42)
뜨끔하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렇다. 이제는 나이가 들 만큼 들어, 내가 입에 문 수저를 따질 때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어떤 수저를 주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니 나처럼 평범한 아버지 입장에선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수저론’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주변을 둘러봐도 ‘수저’의 위력은 대단하다. 요즘 부모의 재력이 주는 후광효과는, 개인의 능력으로 한 세대 만에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이다. 이런 느낌은 고교 동창회라도 가면 더욱 실감한다. 돈이 말하는 연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창회 모임 좌지우지하는 금수저
중앙일보

동창회에서 갈수록 모임을 좌지우지하는 친구들은 아버지를 잘 둔 '금수저들'이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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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는 나름의 성취를 이룬 친구들이나 참석하기에 동기 중 10% 정도만 참석한다. 그런데 거기서 갈수록 목소리가 큰 친구는 아버지를 잘 둔 친구들이다. 학창 시절 공부깨나 하고 일류대 갔던, 이른바 똑똑했던 친구들은 별 볼 일 없다. 기껏해야 변호사, 의사, 교수다. 월급쟁이와 달리 여전히 남 부러울 게 없는 형편이지만 그뿐이다.

한때 잘 나가던 고위 공직자, 대기업 임원 출신 목소리도 낮아졌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데는 별걱정이 없지만, 오지랖 넓게 보란 듯이 돈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졸업 40주년 행사라든가, 은사 초청 행사에 뭉칫돈을 턱턱 내며 이러자 저러자 하는 친구는 재벌 2세거나 서울 강남에 큰 빌딩을 가진 친구다. 개중에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우리 땐 대학 본고사 응시자격만 줬기에 어지간하면 합격했다-에서도 떨어졌던 친구도 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어찌, 사람 구실을 할까’ 싶었던 친구들이 모임을 좌지우지하는 모양새다. 그러니 ‘수저’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밖에.

어쨌거나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그 ‘수저론’은 영어의 관용적 표현에서 나왔지 싶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 해서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 있으니 말이다.

숟갈(spoon)이 어째 수저로 변했는지 모르나 이게 평범한 부모의 속을 긁는 것만은 현실이다. “노력을 안 한 탓이지” “나 때는 안 그랬다” 등등 꼰대 같은 소리로 자식을 다그치다가도 ‘흙수저’를 떠올리면 어째 미안해져 저절로 위축되는 것이 모든 평범한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언젠가 수저론이 막 등장했을 무렵, 대학 다니던 큰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니?”라고. 그 분류 기준은 정해진 게 없지만 수저에도 등급이 있다고 들었기에 솔직히 ‘은수저’ 정도의 답을 기대했다. 절대, 결코, 네버 ‘금수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흙수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밥을 굶긴 것도 아니고 등록금을 밀린 적도 없으니….

아들 "우린 녹 안 스는 스테인리스 수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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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스테인리스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말한 아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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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아이 답이 걸작이었다. “우린 스테인리스 수저예요. 값비싸진 않지만, 튼튼하고 녹 안 슬고 오래 쓰는…” 기대했던 ‘은수저’ 평가는 아니었지만 기특했다. 부모 탓 않고 온전히 제힘으로 헤쳐가려는 자세가 보여서였다.

젊은 세대는 ‘수저론’을 두고 앙앙불락하지만, ‘수저’를 만들어줄 시기도 지난 우리 세대는 ‘수저론’에 가슴이 철렁한다. 어느 재벌 3세가 온라인에 “은수저로 태어났다”고 유세를 떨었다는 소식엔 은수저를 마련하지 못 해준 나로선 가슴이 아리기도 하고.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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