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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방탄소년단 노랫말서 건져올린 니체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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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방탄소년단(BTS)과 트와이스, 워너원의 노랫말에는 헤르만 헤세와 제인 오스틴,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숨결이 서려 있다? 신간 '아이돌을 인문하다'는 상업적이란 이유로 저평가받는 아이돌 노래에서 건져 올린 문학과 철학 사상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방탄소년단 '피 땀 눈물'에서 프리드리히 니체의 흔적을 발견하며 '이러지도 못하는데/저러지도 못하네'라는 트와이스 'TT'에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린다. 그는 "비틀스도, 마돈나도 한때는 대중문화계의 철저한 아이돌로 여겨졌을 뿐"이라며 "그들이 위대한 아티스트가 된 과정에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성장 서사가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 실린 노래는 46곡. 그중 방탄소년단 12곡, 트와이스 11곡, 워너원에 10곡을 할애하며 대중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 위주로 분석했다. 저자는 각 노래 가사의 주요 테마를 포착하고 이와 유사한 주제를 이야기했던 철학자와 소설가를 찾아가는 방식을 일관되게 적용한다.

"수많은 방탄소년단 팬분께서 말씀해 주셨듯 '봄날'의 뮤직비디오 콘셉트는 어설라 K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 속 단편 작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448쪽) 그는 방탄소년단이 뮤직비디오에 쓸 이미지를 SF 대가 어설라 K 르 귄에게서 빌려오는 수준을 넘어 주제의식까지 차용했다고 기술한다. 뮤직비디오에서 리더 RM과 멤버들은 '오멜라스'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파티를 즐긴 후 허무감을 느낀다. 자신들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됐다는 것을 깨닫게 됐기 때문으로 보이며 이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서사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시계가 9시 35분에 멈춰 있는 장면이 세월호 참사를 상징한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아이돌 노래 가사를 무조건 호평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트와이스가 '치어 업(Cheer Up)'을 통해 '나도 네가 좋아/상처 입을까 봐 걱정되지만/여자니까 이해해주길'이라고 말한 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식 여성관이라고 비판한다. "아직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한 상식으로 여기는 '여성적인 태도' '여자의 마음'이란 고정관념이 'Cheer Up'이란 깜찍한 히트 넘버에서 이처럼 은근히 재생산되고 있습니다."(209쪽)

고전을 재해석한 방탄소년단의 노랫말과 뮤직비디오가 다수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를 철학과 문학 세계로 인도했다고 한다. '아이돌을 인문하다' 역시 우리가 별 뜻 없이 흥얼거렸을 아이돌 노래에서 사유를 확장해 볼 지점을 마련해준다. 다만, 일부분에서 저자가 예로 드는 고전과 아이돌의 노랫말에 대한 해석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은 아쉽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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