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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뒤틀린 집단열망의 비극…프레드릭 배크만 소설 '베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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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작가…신작으로 다시 인기 몰이

연합뉴스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 '오베라는 남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새 장편소설 '베어타운'(다산책방)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

따뜻한 감성과 유머, 캐릭터의 힘으로 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또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번역본 기준 572쪽 분량의 긴 서사를 힘있게 끌고 가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돋보인다. 많은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넓게 펼치면서도 각 인물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인간사의 복잡다단함을 깊이 있게 풀어낸다.

전작에 비해 경쾌한 유머보다는 진지한 심리 묘사에 집중하지만, 여러 인물의 다른 관점을 빠르게 교차하며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두 권으로 나뉠 수도 있는 긴 분량임에도 책을 일단 손에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 배경은 북유럽 한 시골 마을 '베어타운'. 북유럽은 요즘 우리에게 이상적인 복지국가,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이 시대 경기 침체, 실직, 지방 소도시 쇠락을 비껴가지 못했다. 거대한 숲이 하늘을 가리고, 겨울이 1년 절반 이상을 차지해 추위와 어둠이 지배하는 이곳은 맑고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음에도 전원생활의 낭만이 사라진 지 오래다. 빈부 격차에 따라 부촌과 빈촌이 정확히 나뉘고, 지역경제의 몰락으로 중산층이 점점 주는 실정이다.

미래 없는 암울한 나날을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열정의 대상은 아이스하키. 이 종목 자체의 매력에 더해 북유럽 최고 인기 종목으로서 불러오는 경제효과가 막강하기 때문이다.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이 전국 대회에서 우승하기만 한다면 새 경기장이 유치되고 사람들이 몰리고 쇼핑몰 등 시설들이 들어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런 기대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똘똘 뭉쳐 청소년팀의 우승만을 고대한다.

특히 거친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문화에 사람들의 집착이 더해지면서 학교와 마을 공동체에는 점점 폭력적인 문화가 스며든다. 베어타운 아이스하키단 모토였던 '문화, 가치, 공동체' 정신은 희미해지고, 과정보다 오로지 '승리'라는 결과에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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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팀 주장인 열일곱 살 '케빈'은 이 마을 역사상 두 번째로 나온 아이스하키 신동이다. 케빈은 점점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대회에서 골을 넣을 때마다 그 기세가 점점 높아진다.

이 마을 첫 영웅 페테르는 NHL(북미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까지 진출했다가 잦은 부상으로 은퇴하고 맏아들까지 잃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아이스하키팀 단장을 맡고 있다. 아이스하키팀에 거는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큰 탓에 페테르의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진다. 똑똑한 변호사인 아내 '미라'와 예쁜 열다섯 살 소녀인 딸 '마야'는 그를 걱정스레 지켜보며 응원한다.

청소년팀의 전국 대회 결승전이 가까워질수록 마을 사람들의 흥분은 고조되고 준결승에서 드디어 대도시 팀을 꺾자 마을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승리의 주인공인 케빈은 부모가 부재중인 집에서 큰 파티를 열고, 케빈이 마음에 두고 있던 마야도 이곳에 초대된다. 술과 승리감에 도취한 케빈은 마야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몹쓸 짓을 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성폭력 사건 이후 피해자인 마야는 충격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해자인 케빈은 사건을 어떻게든 은폐하려 한다.

이때부터 벌어지는 풍경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미투 운동 이후 추하게 나타난 가해자들의 뻔뻔함, 2차 가해 양상과 비슷하다.

작은 시골 마을 이야기를 통해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의 그늘, 공동체 파괴, 첨예한 젠더 문제를 다룬 이 소설은 세계 독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만하다. 지난해 아마존 '올해의 책 톱 3',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1만5천800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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