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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발달장애인 연구’에 과학기술계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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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회의가 앞장서 R&D 안건 선정… 주요 연구 주제로 뽑은건 처음

동아일보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로 꼽히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그동안 ‘연구 사각지대’로 꼽히던 발달장애 연구를 주요 과제로 선정했다. 발달장애인이 국가 과학기술 분야 주요 연구주제로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폐성 장애와 지적 장애 분야는 본인과 가족이 고통을 많이 겪는 데에 반해 그동안 연구에서 소외되어 왔었다.

19일 과학계에 따르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자문회의)가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 연구를 과학기술 분야 국가 연구개발(R&D) 주요 안건으로 선정하고 3월 말 의장(대통령)에게 자문안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문회의 관계자는 “과학계와 의학계 등의 의견을 종합해 발달장애인 연구 필요성에 대한 자문안을 마련해 의장에게 최종 보고했다”고 밝혔다. 자문회의는 20조 원에 달하는 국가 과학기술 R&D 예산을 배분, 심사하고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학기술 최상위 컨트롤타워다.

염한웅 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은 “정부의 기존 R&D 체계를 점검한 결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주(카테고리)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며 “재활기술 정도로 (간접적으로) 다뤘던 기존 체계를 근본적으로 정비하려 한다”고 밝혔다.

발달장애는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자폐스펙트럼 장애) 둘로 나뉜다. 2016년을 기준으로 총인구의 4.9%인 251만 명이 등록장애인으로, 이 중 21만7500명(8.7%)이 발달장애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실제 장애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희정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만 봐도 2017년 한 해 동안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1000여 명 중 장애인 등록을 위해 진단서를 받아간 비율은 12.6%에 그친다”며 “상당수는 사회적 시선 등을 의식해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은 고되다. 올해 2월 대전에서 열린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과 책임’ 토론회에서 이호희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대전지부장은 “최근 치매가 사회 문제가 됐는데, 발달장애는 조기치매와 같다”며 “치매와 비슷한 고통이 본인과 가족에게 수십 년간 이어진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발달장애인 수명이 다른 사람보다 짧다는 의학적 증거가 없다”며 “한국인의 평균수명(2014년 기준 82.2세)이 곧 발달장애가 지속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29세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이 지부장은 “중증이 아닌 제 아들은 일도 하고 대중교통도 타지만, 중증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과학기술계가 발달장애인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연구 난도가 높고 해결할 문제가 아직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장애가 드러나는 양상이 사람마다 크게 달라 진단이 어렵다. 원인이 불분명해 치료도 어렵다. 유전자, 환경, 뇌발달 등 상상할 수 있는 요인이 다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자폐 유발 후보 유전자만 약 1000개에 달한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인 만큼 기초과학과 임상의학이 긴 호흡을 갖고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은준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뇌질환연구단장(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은 “현재는 과학계와 임상의학계가 기관이나 연구자별로 자발적 협력연구를 하고 있는 상태”라며 “발달장애인 연구는 유전자 1개의 기초연구에만 15∼20년이 걸리는 장기전인 만큼 연구 인력과 인프라 확충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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