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1 (수)

[if] 태우거나 날려 보내거나… 과학계, 미세 먼지와 전쟁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국이 미세 먼지에 가려 숨 막히는 봄날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3개월 동안 발령된 미세 먼지 주의보만 230회를 넘는다. 미세 먼지 방지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리고, 공기청정기를 찾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지만 갈수록 악화되는 미세 먼지 피해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미세 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해마다 미세 먼지 농도가 짙어지며 국민 건강까지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자 과학자들도 청정한 공기를 되찾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세 먼지 발생을 30% 줄이겠다는 목표로 '미세 먼지 국가전략프로젝트 사업단'이 출범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기계연구원·서울대 등 10곳의 연구기관 소속 500명 과학자가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이 사업단에 2020년까지 492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미세 먼지 태우고 밀어내는 기술들 개발

미세 먼지 하면 다들 중국을 떠올리지만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의 양도 만만치 않다. 과학자들은 자동차와 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 먼지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송영훈 박사는 미세 먼지를 태우는 '플라스마 버너' 기술을 개발해 생산 현장에서 저감 효과를 테스트하고 있다. 디젤기관에서 배출되는 매연가스를 섭씨 300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로 태워 미세 먼지를 최대 95% 없앨 수 있는 기술이다. 플라스마는 태양에서처럼 기체가 초고온 상태가 될 때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돼 따로 노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1억도 이상의 핵융합 발전에 이용됐지만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만든 플라스마를 공기청정기 제작에 사용한다.

 



조선비즈

지난달 29일 서울 남산에서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미세 먼지가 덮인 하늘을 보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미세 먼지의 정체를 밝히고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 일반 생산 시설에 플라스마 버너를 설치해 미세 먼지 저감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향후 유조선 등 대형 선박이나 열병합 발전소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플라스마 버너는 기존 미세 먼지 연소기보다 크기가 10분의 1수준으로 작아 일반 차량에도 장착이 가능하다.

한국화학연구원 온실가스자원화연구그룹 허일정 박사는 2차 미세 먼지 유발 원인 질소산화물과 암모니아, 황산화물을 저감할 수 있는 촉매와 흡착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공기 중에 유입된 대량의 미세 먼지를 제거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 장홍영 교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대기에 퍼져 있는 미세 먼지를 없애는 연구를 하고 있다. 건물 옥상에서 플라스마를 발생시켜 미세 먼지가 전기를 띠게 한 뒤 반대 성질의 전기장으로 멀리 밀어내는 방식이다. 실험실 수준에서 미세 먼지가 상당량 없어지는 성과를 보였다.

조선비즈



장 교수는 "서울의 광화문이나 강남 한복판 고층 빌딩들에 플라스마 발생 장치를 설치하면 대기 중 미세 먼지를 수십㎞ 상공까지 날려보낼 수 있다"며 "이론적으로 1000㎾(킬로와트)의 전력을 사용해 플라스마를 발생하면 서울 규모 대기의 미세 먼지를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세 먼지로 실내 활동 시간이 늘면서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의 이혜문 박사는 지난해 5월 공기청정기의 고성능 헤파(HEPA) 필터보다 성능이 우수하면서 에너지 효율이 좋은 공기청정기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전기 에너지 효율이 헤파 필터보다 10배 높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기술의 핵심은 공기청정기 안으로 흡입된 먼지에 전기를 띠게 한 것이다. 덕분에 금속(알루미늄) 필터에 쉽게 달라붙는다. 연구진은 일반 부직포 필터에 전기 전도성이 높은 나노 크기의 알루미늄 덩어리를 코팅했다.

이 박사는 지난달에는 KIST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이 필터가 유해 세균을 없애는 항균(抗菌) 기능까지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현재 삼성전자, 캐리어 등 공기청정기 제작 기업에 기술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발(發) 미세 먼지 여부 실시간 확인

미세 먼지 예방을 위해서는 어디서 어떤 종류가 유입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금속이나 암모늄 등 미세 먼지를 구성하는 유해 물질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면 인체 유해성 여부와 미세 먼지가 어떤 지역이나 국가에서 유입됐는지 알 수 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최근 국내 미세 먼지에서 중국에서 사용된 폭죽 성분을 찾아내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 먼지가 국내로 유입됐음을 입증했다.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인공 미세 먼지를 만들어 인체 유해성을 알아보는 동물실험을 하고 있다.

박기홍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최근 실시간으로 미세 먼지 성분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레이저로 미세 먼지를 쏘아 온도를 수백도 이상 높여 이온 상태로 만든 다음 구성 성분의 질량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박 교수는 "기존 기술로는 성분 분석에 꼬박 하루가 걸렸는데 새 기술은 실시간으로 미세 먼지 성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세 먼지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는 대당 5~6억원가량인데 현재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3년 내 국내 연구진이 상용화할 경우 상당한 수입 대체 효과도 기대된다.

 



최인준 기자(pen@chosun.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