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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if] 뇌 속에 작은 칩… 죽어있던 기억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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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기억력이 손상돼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워진다. 수십 년 전의 일은 어제 일처럼 떠올리지만 방금 전에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는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 겪은 사건을 기억하는 능력이 크게 손상됐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를 깨울 방법을 찾아냈다. 뇌가 정상 가동될 때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복제해 기억 중추를 자극하는 방식이다. 환자 대상 임상시험에서 기억력을 높이는 효과를 입증했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는 물론, 전투 중에 입은 뇌 손상으로 가족의 얼굴을 몰라보는 군인들이 기억을 회복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뇌에 '기억 코드' 주입해 기억력 높여

미국 웨이크 포리스트 뱁티스트 병원의 로버트 햄슨 교수와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공동 연구진은 지난달 27일 국제학술지 '신경 공학 저널'에 "뇌에 이식한 전극으로 전기 자극을 줘 환자의 기억력을 35~37% 높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장기 기억의 하나인 일화(逸話)기억에 초점을 맞췄다. 알츠하이머 치매나 뇌졸중, 뇌 손상을 입으면 일화기억이 크게 손상된다. 실험 대상은 뇌전증(간질) 치료를 위해 이미 여러 곳에 전극을 이식받은 환자 8명이었다.

USC 시어도어 버거 교수와 동 송 교수 연구진은 먼저 기억의 코드를 찾았다. 화면에 간단한 도형을 보여주고 바로 다음 화면에서 여러 개의 도형 중 방금 본 도형을 고르도록 했다. 환자가 정답을 찾으면 뇌 기억 중추인 해마에서 어떤 형태의 전기신호가 발생하는지 알아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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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무선통신에서 잡음을 제거하고 신호 감도를 높이는 데 이용되는 다중 안테나 입출력(MIMO) 기술을 적용해 뇌 신경세포들 사이에 오가는 전기신호를 잡아내 그대로 복제했다.

다음 실험에서 복제한 기억 코드를 뇌 기억 중추인 해마에 주자 도형에 대한 일화기억력이 37% 높아졌다.

도형보다 복잡한 사진을 보여주고 75분 뒤 기억을 하게 하는 실험에서도 35%의 기억력 향상 효과가 나타났다. 햄슨 교수는 "처음으로 뇌신경세포의 기억 코드를 파악하고 이를 뇌에 입력해 기억력을 높인 연구 성과"라고 밝혔다.

◇단기기억 이어 장기기억에도 효과

최근 전기 자극으로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키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연구진은 전기 자극으로 15년간 잠들어있던 식물인간을 깨우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원래 20여 년 전 뇌전증 환자의 발작을 막기 위해 처음 뇌에 전극을 이식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파킨슨병이나 수전증 같은 운동장애나 강박증 같은 정신 질환 치료에도 뇌 전기 자극이 이용되고 있다. 장진우 연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약물이나 마약 중독을 뇌에 이식한 전극으로 치료하는 연구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억력 회복 연구는 사회의 고령화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가 급증하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뇌전증 환자 25명의 뇌에 이식한 전극으로 전류를 흘려 기억력이 1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USC 동 송 교수는 지난해 같은 방법으로 단기 기억력을 25%까지 높이는 데 성공했다. 미국 국방부는 뇌 손상을 입은 퇴역 군인들의 재활을 위해 뇌 전기 자극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기억 이식도 가능

일반인도 뇌 전기 자극 연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 공군연구소는 지난 2016년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곳인 전전두엽피질에 전류를 흘려 드론 조종사의 집중력을 높였다고 발표했다. 전기 자극을 받은 조종사는 정보처리량이 30% 증가했다. 스포츠계에서는 운동선수의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른바 '뇌 도핑'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목 뒤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무기 사용법이나 무술 훈련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는 장면이 나온다. 동물실험에서 그 같은 일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웨이크 포리스트 뱁티스트 병원의 샘 데드와일러 교수는 쥐가 특정 레버를 건드리면 먹이를 먹을 수 있게 했다. 연구진은 레버 훈련을 거친 쥐 30마리의 뇌에서 기억 코드를 추출했다. 레버 훈련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쥐의 뇌에 복제한 기억 코드를 전기 자극으로 주입하자 먹이를 주는 레버를 바로 골라냈다. 기억이 이식된 셈이다. 연구가 발전하면 치매나 뇌 손상을 입은 환자에게 기억 코드를 담은 칩을 이식해 칫솔질이나 운전법을 재교육할 수 있다.

물론 상용화까지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장진우 연세대 교수는 "뇌 전기 자극 치료를 다양한 질환 치료에 이용하려면 먼저 뇌에 이식하는 전극의 소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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