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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입장문으로 본 MB의 '정치보복' 프레임…짜맞추기→역사에 마지막이길→언젠가 할 말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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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하루 전인 지난 21일 이를 예감하고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미리 작성한 입장문. 영장이 떨어진 즉시 이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이를 옮겼다. 사진=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역대 대통령 중에선 사상 4번째로 구속돼 갇히는 불명예를 안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이미 자신의 구속을 예감한 것으로 보인다.

22일 오후 11시6분 서울중앙지방법원 박범석 영장 전담 부장판사가 "수사과정 정황을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 23일 새벽 0시18분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한 MB는 지난 21일 자신의 심정을 담은 글을 미리 작성해 놓았다.

MB는 영장 발부 소식을 듣자 22일 밤 11시30분을 전후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3장 분량의 자필 입장문을 실었다.

MB의 자필 입장문은 지난 1월17일, 이달 14일 검찰 출석 때 각각 발표한 입장문과 궤를 같이한다. 즉 혐의에 대한 인정이 아닌 '억울함'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모두 '내 탓'이라고 자책했지만 혐의 인정은 안해

이 전 대통령은 자필 입장문에서 "지금 이 시간 누굴 원망하기보다는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라며 글을 시작했다.

이어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면 기업에 있을 때나 서울시장, 대통령직에 있을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대통령이 되어 '정말 한번 잘해 봐야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먼저 매사 모든 노력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잘못된 관행을 절연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미흡(?)하나마 책임을 자인했다.

그러나 검찰이 구성영장 청구서에서 밝혔던 18개 혐의를 인정하는 언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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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필 입장문. 이명박 전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정말 열심히 했지만 지난 10개월은 인륜파괴 되는 아픔 겪어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세계 대공황 이래 최대 금융위기를 맞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같이 합심해서 일한 사람들, 민과 관, 노와 사, 그 모두를 결코 잊지 못하고 감사하고 있다. 이들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뿐"이라고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재판에 넘겨진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아울러 "지난 10개월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며 "가족들은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글로 집요하게 수사를 벌이는 검찰을 넘어 문재인 정권 전체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표현했다.

◆'나의 구속'으로 가족 고통 줄어들었음···부인 김윤옥 여사는 놔 뒀음 하는 심정 전해

이 전 대통령은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며 명품 백 수수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부인 김윤옥 여사, 뇌물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사위인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 관련 의혹에 휩싸인 아들 시형씨 등을 놔 뒀음 하는 희망을 나타냈다.

◆언젠가 할 말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과오 역사에 맡겨야' 주장

이 전 대통령은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며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며 끝을 맺었다.

자신의 과오 여부는 현재가 아닌 미래의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는 뜻과 함께 죄가 없음을 에둘러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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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월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사무실에서 측근들이 도열한 가운데 "검찰 수사가 나늘 노리고 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1월17일 입장문서는 "짜맞추기 수사 말고 나에게 책임 물어라"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가가 본격적으로 조여들어오자 지난 1월17일 짧막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후 자필 입장문과 결이 완전 다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고 지지층을 기둥삼아 정치보복 프레임을 가동했다.

그러면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헌신한 공직자(측근)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고 촉구했다.

짜맞추기 수사라는 용어를 통해 정치 보복임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14일 "하고 싶은 얘기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 "역사에서 마지막이 되었음" 거듭 정치보복 피해자임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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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검찰에 출석한 이 전 대통령이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음 한다"라며 정치 보복의 희생양임을 암시하는 내용의 입장 발표를하고 있다. 연합뉴스TV 캡처 .


이 전 대통령은 강경한 입장 발표에도 결국 검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도 '정치보복' 프레임을 다시 등장시켰다.

미리 준비한 입장문이 적힌 메모지를 꺼낸 든 이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 앞에 서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지지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얘기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며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한다"고 현 정권이 전 정권 대통령을 겨냥하는 정치 보복이 되풀이 되고 있음을 은연 중 두드리지게 표현했다.

원래 준비했던 입장문에서는 “이번 일이 모든 정치적 상황을 떠나 공정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문장이 있었으나 이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에서는 읽지 않았다. 대신 조사 직전 검찰 간부와 면담 자리에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까지 3차례 이 전 대통령의 입장 표명으로 볼 때 앞으로 재판에 이른다면 비슷한 프레임으로 자신을 방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프레임 전략은 심정에 호소하는데 그치는 만큼 증거와 논리, 합리성을 따지는 법정에서 통할지는 미지수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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