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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칼럼]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자기 부정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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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지난 MB 정권기인 2010년 12월, 국내커피믹스시장에서는 카세인나트륨 논쟁이 시쳇말로 전쟁 수준이었다.

연간 1조 규모를 넘나드는 국내시장에 뛰어든 후발업체가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들고나온 카세인나트륨의 유해성 논란 때문이다. 비록 식약청에서 허가된 식품첨가물이지만 자신들은 유해한 첨가물 대신 무지방 우유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카피 문구도 매우 도발적이었다. “우리는 커피믹스 제품에 화학합성물인 카세인나트륨 대신 진짜 우유를 사용한다.” 진짜와 가짜의 논쟁의 프레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유명 여성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워 “그녀의 몸에 카세인나트륨이 좋을까? 무지방 우유가 좋을까?”라는 표현으로 유해와 무해의 프레임으로 초점을 구체화시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존 업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카세인 나트륨이 들어가 있지 않은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던 것을 보면, 식품 안전성에 예민한 소비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만한 성공한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었던 것 같다. 새삼 카세인 나트륨에 대한 유해성 여부에 대한 논란을 재론하자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메커니즘에 내재한 ‘자기부정의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함이다.

끊임없이 파이를 키워야만 쳇바퀴의 회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숙명은 속칭 혁신이라는 이름의 ‘신상’을 재생산해야 한다. 그 특유의 왕성한 생산력 때문에 종종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기존 제품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전에 생산된 제품은 이러한 점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점이 개선되었다는 정도로는 안 된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내놓았다며 혁명 수준의 혁신을 강조해야 한다. 물질문명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선 당연히 지향점이 분명한 발전적 방향이다. 지극히 생산적이며 건설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독해 보이기까지 한 자기부정의 메커니즘이 그 자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생산자들은 자신들이 열과 성을 들였을, ‘생때같은 자식’과도 같은 생산품과 함께 본인의 생산행위 자체를 부정당하게 된다. 새로이 탄생한 신제품은 제 형과 같은 구형의 제품을 부정한다. 말하자면 형제부정이다. 자신의 원형이 되었을 이전의 제품을 부정한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원(오리진)에 대한 부정이며 궁극적으로 자기부정이다.

지난주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섰다. 차명 형식으로 된 본인의 회사가 분명해 보이는 기업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하고, 모든 부정한 이권개입 및 왜곡된 국정 운영 일체를 부정했다.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 불구속 수사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구속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분은 정부를 기업처럼 운영했던 듯싶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측근들의 이권 사업을 위해 국가시스템을 온전히 장악하고 집권 5년간 풀가동한 듯싶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사법 당국의 판단은 물론 언론의 진솔한 탐사 보도에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만약 지금까지 알려진 일 이상의 어떤 상상력이 더 필요한지 필자의 그릇으로는 깜냥 부족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검찰조사 전에 포토라인에서 보인 그분의 태도는 매우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닮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본주의적 재생산체계를 위한 마케팅 전략은 ‘자기 부정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분명 혁신이다. 그러나 진정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진솔한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배제된 자기부정은 혁신이 아니라 나 혹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체제 존속을 위한 지극히 구체적이고도 치밀한 전술적인 ‘생존전략’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호명하지 못하는 슬픔보다 자식을 자식으로 부르지 못하는 자의 비애는 어떻게 가늠이 될까! 어떠하든지 그는 자신이 만들고 온갖 공을 들여 키운 회사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말하자면 똑똑하고 잘난 서자를 둔 아비의 운명이 됐다. 그로 인해 공·사적으로 자신을 위해 부정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식솔들과 공복들의 신뢰마저 부정해야 하는 외톨이가 됐다. 셀러리맨 신화에서 대통령이 된 그분의 자서전 제목처럼 ‘신화는 없다.’ 자신의 부정으로 돌아서 버린 측근을 법정에서 대면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만이 남았다. 전직 대통령인 그분은 지금 얼마나 외로울까?

이제라도 국가에 위탁한 재화의 공정한 재분배를 통해 주권자인 시민에게 돌아가야 할 국고가 공중으로 분해되거나 누군가의 뒷배를 채웠다면 서둘러 되돌리는 작업을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한 첫 번째 절차로서라도 그간 흔하게 행했던 정무적인 판단은 일찌감치 팽개치고 진정성 있는 사법 당국의 공정한 법적 판단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그 진행 과정을 똑바로 지켜보아야 하는 감시자의 역할인 것 같다.

적어도 그분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메타포로라고 해도 무방해 보이며 왜곡된 산업화 시대의 살아있는 유물임이 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그분은 산업화가 진행된 지난 반세기 우리들의 ‘왜곡된 자화상’이다. 그것도 투표지에 우리 손으로 직접 그린 욕망이 투영된 자화상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시민은 건강한 자화상을 새롭게 그려야 할 때를 맞이하였다. 이제 새 도화지를 펼치고 붓을 들어야 할 때이기에 지난 자화상은 박물관에 모시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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