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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장강명의 내 인생의 책] ②블랙 달리아| 제임스 엘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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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 작품의 교과서

경향신문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달리아>는 나의 장편소설 작법 교과서였고, 언젠가 이르고픈 목표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추천하는 글을 여러 번 쓴 적이 있어서 194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단히 끔찍한 범죄소설이라고만 소개해 둔다.

이 자리에서는 작가인 제임스 엘로이에 대해 써보려 한다. 1948년생인 이 미국 소설가는 살아 있는 동안에 ‘거장’ 칭호를 얻었고, 동시에 격렬한 비판도 받았다. 주제와 스타일 모두 굉장히 논쟁적이다. 좀 과장하자면, 나는 문학 독자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엘로이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로.

작가이자 평론가인 줄리언 시먼스는 엘로이를 혐오한다. 소설가 스튜어트 네빌은 엘로이의 열렬한 숭배자다. 그런데 두 사람이 그러는 이유는 사실 동일하다. 시먼스에 따르면 엘로이는 “미국은 곧 폭력”이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힘만이 유일한 덕목”이라고 주장한다(<블러디 머더>). 네빌이 보기에 엘로이는 “모두가 손톱 밑에 핏자국을 묻히고 있는” 세계를 그리며 “권력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과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싼 대가”를 증언한다(<죽이는 책>).

말하자면 엘로이의 작품들 자체가 이런 질문이다. ‘추악한 인간들의 추악한 행동을 냉정하게 묘사하는 것도 문학이 될 수 있나?’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도 없는 물음이다. <블랙 달리아>는 충격이었고, 다른 작품들도 모두 얼얼했다.

나처럼 대답한 독자는 ‘소설은 인간을 위무해야 하고,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도그마에 더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게 된다. 나는 그렇게 엘로이의 문예운동에 반강제로 합류했다. 그래서 오늘도 추악한 이야기를 궁리한다.

<장강명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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