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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세상읽기]비영리, 세상을 바꾸는 연구와 지식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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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중심 연구.’ 오래전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2010년 무렵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이 대외적으로 표방하던 표어였다. 당시 수도권 소재 지방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무맹랑한 사업에 대한 명분과 타당성을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 업무에 지쳐있던 차에 ‘생활인’ ‘현장중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당장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여러 활동에 동참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의 연구를 현재의 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돌이켜보면, 수십년간 어렵게 공부하여 고작 어용학자가 되었다는 모멸감에서 벗어날, 좀 더 근본적으로는 ‘돈을 위한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중에는 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상하고 무리한 사업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살리기’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그동안 견지해온 입장을 버리고 사업에 찬성하는 무수한 학자들이 나타났다. MB가 유독 운이 좋은지 ‘뉴타운 사업’ ‘녹색 뉴딜’ 등 해괴한 개념을 가지고 나올 때마다 학계 사람들은 비판하기는커녕 사업의 전도사가 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때 반대하지 못했던 것은 무사히 학위과정을 마쳐야 했고, 학위를 받은 후에는 직장을 잡아야 했고, 직장에서는 재계약에 탈락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활인을 위한 연구, 당사자성에 뿌리를 둔 현장중심 연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후 항상 머리를 무겁게 하는, 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연구의 대가로, 좀 더 근본적으로는 지식을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지금 일하고 있는 연구원에서 다른 눈치 안 보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회원이 매달 얼마씩 후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라는 것이 물건 만들 듯 일정에 맞추어 쓸 만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간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원 모두를 뿌듯하게 할 만한 연구결과가 항상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후원을 중단하는 분들도 많다. 순수한 시민의 힘만으로 연구원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공공정책을 바로잡고 올바른 정부를 세우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찾는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전략으로 연구원 밖에 있는 많은 시민을 연구를 같이 해나갈 동반자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익을 얻기 위해 꼭꼭 숨기는 게 아니라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식은 기본적으로 비영리여야 한다. 우리 산과 들에서 오래도록 나고 자란 식물의 특허권을 외국의 거대기업이 차지하고, 그래서 특허료를 내지 않으면 우리 농부들이 키우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런 부당함을 통해 깨달은 것이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상이 없으면 아무도 연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는 수많은 비영리 연구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인터넷을 유용하게 하는 웹 서버의 대부분은 공개 소프트웨어인 리눅스 기반이다. 누구나 쓸 수 있고 수정이 가능한 위키 철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공개사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오픈소스 라이선스에 따른 정보기술 분야의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힘입어 불로소득을 철저히 배제하고 노동의 가치에 좀 더 비중을 둘 수 있는 비영리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시장경제를 구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구자 버전으로 표현하자면, “기득권은 돈을 벌겠다고 빅데이터 기술을 연구하겠지만, 우리는 지식을 나누기 위해 빅데이터 기술을 연구할 것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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