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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평창 동계올림픽을 보자. 올림픽 직전에 대통령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낮아졌고, 세간에서는 가상통화 규제와 남북 단일팀 구성이 그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동계올림픽이 진행되고 특사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여론은 또다시 요동쳤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 결정된 1월17일에 있었던 리얼미터 조사에서 남북 모두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해야 한다는 응답은 20대에서 38.9%로, 60대(27.0%)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그러나 한 달 후인 2월20~22일 실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한반도기 공동 입장이 잘된 일이라는 응답은 20대에서 73%로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같은 응답자에 대한 반복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20대 여론에 일대 반전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한 번의 반전이 있다. 20대 평균은 73%이지만, 남성 20대는 62%로 여전히 60대(54%)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지지를 보이는 반면 여성 20대는 85%로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다. 20대 내부에서 성별 차이는 무려 23%포인트에 달한다. 20대 여론의 반전으로 보였던 것은 사실은 20대 여성 여론의 반전이었던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광주·전라의 지지율은 85%였고 대구·경북의 지지율은 57%였으니, 한국 정치의 최대 변수로 간주되곤 하는 지역 간 차이의 최대치가 28%포인트였다. 적어도 20대 내부에서 젠더 갭은 이제 지역 못지않게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같은 조사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도 20대 남성은 43%만 잘된 일이라고 평가해서 모든 세대에서 가장 낮은 반면 20대 여성은 59%로 모든 세대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보냈다. 이 사안에 대해 광주·전라와 대구·경북의 차이가 21%포인트였는데, 20대 내부의 젠더 갭은 16%포인트로 역시 만만치 않은 파급력을 보여줬다.
20대가 아닌 다른 세대에서 성별 차이는 어떨까. 앞서 언급한 갤럽조사 중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대해서는 세대별로 성별 분리 효과가 적게는 3%포인트에서 많게는 7%포인트의 차이를 보이는데, 20대의 23%포인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적다. 그나마 50대 이상에서는 성별 견해의 순위가 역전되어 여성보다 남성의 찬성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해서는 젠더 갭 효과가 적게는 1%포인트에서 많게는 5%포인트의 차이를 보여서 역시 20대의 16%포인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이번에도 역시 성별 견해의 순위가 50대 이상에서는 역전되어 젊은층에서는 단일팀 구성에 대한 지지가 여성이 더 높고 50대 이상에서는 남성이 더 높다.
다소 길게 수치를 인용했지만, 일관된 발견들을 요약하면 세 가지다. 첫째, 기성세대 여성들은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 남성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20대 여성은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둘째, 정치적 견해차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에 주목하면, 기성세대 여성은 남성보다 더 보수적이고 20대 여성은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다. 셋째, 20대에서의 젠더 갭 효과는 한국 정치의 최대 변수로 불려왔던 지역 간 차이의 최대치에 견줄 수 있을 만큼 크다. 20대 유권자의 수는 약 676만명인데,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한반도기 공동입장의 경우처럼 23%포인트의 차이를 보인다면 얼추 계산해도 100만표 정도는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미국 정치에서 유권자의 젠더 갭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90년대부터다. 빌 클린턴은 1996년 대선에서 여성 표의 54%를, 그리고 남성 표의 43%를 가져갔다. 그는 공화당 후보였던 밥 돌에 비해 800만표를 앞섰는데, 여성 표에서 앞선 것이 1100만표였다. 그 이후 대부분의 주요 정책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은 20%포인트 내외의 견해차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제 젠더 정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정치세력들은 미투 고발을 지방선거용으로 소비하려 하기보다 미투가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해 시급하고도 진지하게 장기 대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할 정치적 이유도 충분하다. 100만표가 걸려있지 않은가.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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