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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오후4시에 애 데려가라는 어린이집…워킹맘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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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3세 딸을 둔 직장인 엄마 민 모씨(34)는 지난해 딸을 맡길 어린이집을 찾다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저녁 7시 30분까지 운영한다는 공지가 무색하게 대부분 어린이집으로부터 오후 4시에는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평소 오후 6시 30분에 퇴근하는 민씨는 어쩔 수 없이 매달 80만원을 내고 하원 도우미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왜 강하게 항의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민씨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재워주는 보육교사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노(No)'라고 말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이른바 '워킹맘'들의 고민이 늘고 있다. 일반적인 출퇴근 시간과 다른 어린이집 운영시간 때문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으로 정해진 어린이집 운영시간은 오전 7시 30분~오후 7시 30분. 이를 잘 준수하는 국공립 어린이집과 달리 일부 가정·민간 어린이집은 "일반적인 등원시간은 오전 10시이고, 오후 3~4시가 넘으면 남아 있는 아이가 없으니 하원시켜야 한다"고 학부모들에게 통보한다.

실제 매일경제 취재 결과, 오후 4~5시 이후에는 아이를 맡을 수 없다는 어린이집이 많았다. 3세 아이를 둔 김 모씨(36)는 "아내가 복직하면서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려고 했지만 선생님이 '4시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등·하원 도우미를 쓸 것을 권유했다"며 "저녁까지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는 선생님이 사실상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어린이집들이 법정 보육시간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못된 부모'가 되는 것 같은 죄책감 때문에 문제 제기도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같은 워킹맘인 보육교사에게 내 아이만 끝까지 남아 봐 달라고 말할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다. 일산에 사는 워킹맘 유 모씨(32)는 "선생님이 '종일반 아이들도 4시에는 다 집에 가서 아이가 외롭다'고 하는데 대꾸할 수 없었다"며 "괜히 내가 우리 아이를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 부모처럼 보이지 않을까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맞벌이 부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등·하원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양가 부모님의 손을 빌리고 있다. 유씨는 "시어머니께서 도와준다고 하는데 용돈조로 얼마를 드려야 할지도 고민"이라며 "이것도 넓게 보면 보육비에 해당하는데 정부가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워킹맘 박 모씨(34)는 "어머니가 아이 등·하원을 돕다가 몸이 안 좋아져 월 100만원을 주고 아주머니를 쓴다"며 "이 정도 경제적 부담을 지면서 일하느니 차라리 직장을 그만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2016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2015년 전국 보육 실태 조사'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확인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0~5세 아동을 둔 워킹맘들의 평균 근로 소요시간은 9.4시간으로, 평균 어린이집 이용시간인 7.6시간과 약 2시간 차이가 있다. 하원시간도 70% 가까이가 오후 3~5시로 직장의 일반적인 퇴근시간인 오후 6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보건당국의 실태 조사가 진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문제는 여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관리당국인 복지부는 구청 등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올 때에만 조사에 들어갈 뿐 전수조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정해진 법정 보육시간은 권고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준수해야 할 지침이며 위반 사실이 적발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매일경제 취재 결과 정작 일선 구청에서 진행하는 정기 점검은 한 해에 한 번꼴인 가운데 이마저도 최종 하원시간이 언제인지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정 보육시간 준수 여부에 대한 관리감독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법정 보육시간(12시간)과 근로시간(8시간) 사이의 괴리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 어린이집 교사들 사이에서는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을 준수하면서 오후 4~5시까지 일하는 게 적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전문가들은 맞벌이 부부들의 실제 근무시간과 통근시간을 감안해 현실적인 어린이집 이용이 가능하도록 등·하원 시간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2교대로 운영돼야 하지만 현재는 2교대를 전제로 지원이 되고 있지 않다"며 "정부에서 2교대 운영에 대한 지원을 해줘야 법적 운영시간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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