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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안희정’이라는 보통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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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한겨레21

#미투의 들불이 한국 사회의 우상을 무너뜨렸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그는 어쩌면, 한국에서 문재인 대통령 다음으로 큰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쳤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의 길을 제시했다. 시민들은 이따금 엉뚱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젊고 잘생긴 이 50대 젊은 정치인을 사랑했다. 3월5일 #미투의 거대한 쓰나미가 그를 덮치기 직전까지도 그는 공개 석상에서 미투를 찬양했다.

그런 그가 쓰러졌다. 안 전 지사는 이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안고 있는 피의자일 뿐이다. 그는 3월9일 오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출석해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겨레21>은 이 순간이 여성을 멸시하고, 공격하고, 성적 대상으로 삼아온 한국 남성들의 오랜 위선이 무너져 질적 변화를 맞이한 순간이라 믿는다. 하여, <한겨레21>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이 고요하고 뜨거운 투쟁을 #미투가 불러온 ‘3월 혁명’이라 부르고자 한다.

생각해보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길고 오랜 여성들의 투쟁이 있었다. 1980년대에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내 폭력’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드러낸 여성운동은,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을 만들어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알렸다. 이후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을 계기로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2002년 1월 전북 군산 개복동 성매매집결지 화재 참사의 교훈을 받아안아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은 한국 사회가 여성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는 ‘잔혹한 정글’임을 드러냈다. 성난 시민들은 2016년 겨울 박근혜 정부를 타도했고, 이제 2018년 봄 이 사회의 가장 기저에 있는 남성들의 위선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1960년 4·19 혁명 때 성난 시위대는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 우뚝 서 있던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렸다. 성난 시민들은 동상의 목에 새끼줄을 매어 끌고 다녔다. 동상은 파괴되고, 해체됐다.

한국 사회에서 안희정은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온갖 위선으로 가득 찼던 우리 안의 안희정들, 이윤택들, 고은들, 김기덕들, 안태근들의 우상도 파괴되고 해체될 것이다. 이 3월 혁명은 4·19보다, 6월 항쟁보다. 2016년 겨울의 촛불혁명보다 더 근본적이고 처절한 한국 사회의 성찰과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3월9일 또 하나의 근본적인 변화가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제안한 북-미 정상회담 요구를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까지로 언급한 이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찾아온 한반도의 분단은 1980년대 말 닥친 냉전 종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70년 넘게 이어져왔다. 이 회담과 그 뒤로 이어질 길고 지난한 협상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고,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결정적인 조처를 취한다면 한반도를 지배해온 이 저주스러운 증오와 갈등, 분단 구조 역시 단숨에 해체될 수 있다.

<한겨레21>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2차 정상회담을 열기 직전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처절한 248km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외롭게 걸으며 외쳤다. “비무장지대는 무장하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그곳에서 평화는 더 절실하고, 자연은 더 눈물겹다.” <한겨레21>은 오랫동안 평화를 갈구해온 남북 8천만 명을 위해, 남성 중심 사회의 더러운 위선에 시름해온 여성들을 위해, 한반도가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비무장지대가 되길 기원한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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