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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Stage] 연극 미저리 | 일방적 사랑은 폭력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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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연극, 뮤지컬, 클래식 등 예술계 주요 공연에 대한 생생한 리뷰 또는 정보성 기사가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매경이코노미

연극 미저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김상중·김승우·이건명(이상 폴 역), 길해연·이지하·고수희(이상 애니 역)/ 4월 15일까지 공연/ 만 13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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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개봉한 영화 ‘미저리(misery)’를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소설 미저리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 폴이 평범한 외모의 간호사 출신 독신녀 애니에게 감금된 후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스릴러의 백미로 꼽힌다.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지난 2월 9일 개막한 연극 미저리는 영화 못지않게 긴장감을 준다. 특히 원형으로 회전하면서 장면을 전환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팔과 다리를 다친 폴이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기란 마땅치 않다.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하는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애니의 광기 어린 성격과 행동으로도 한계가 있는데, 무대를 세 등분해 회전하면서 긴장감을 부여했다. 연극 무대로 이처럼 창의력 있는 연출은 본 적 없는 듯하다.

이 연극은 브루스 윌리스가 2015년 연극 데뷔작으로 선택해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작품이다. 판권을 미국 연극에서 가져왔다. 물론 한국 연극도 과거와 달리 재기 발랄한 연출이 많이 있지만, 아직 최상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편이다. 거기다 성추문까지 온통 휘젓고 있으니 당분간 순수 창작극을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연극 미저리를 단순히 작품 수준이 높다는 이유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극본 자체가 주는 메시지도 간단치 않다. 사랑은 때로는 욕망을 포장하는 흉기가 된다. 한번 돌이켜 보자. 얼마나 많은 성폭력이 일방적이고 배려 없는 사랑 때문에 이뤄졌는지. 그동안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하는 것을 두고 잘못된 인식이 많았다. 일방적이지만 끈질기게 구애하면, 만약 그것이 진심이라면 사랑은 이뤄진다는 순정만화 속 이야기들. 이들은 대체로 아름답게 포장된다.

여전히 그런 로맨스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구애가 매우 폭력적일 수 있다. 권력관계가 작용한다면 더욱 그렇다. 직장 상사가 일방적으로 부하 직원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어떨까. 상사는 물론 진심이라고 하겠지만 직원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떨까. 받아들일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는 괴로운 상황에 몰린다.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포장할 수 있을까.

▶예술계 미투 운동에 시사점…원형 회전무대 장면 전환 ‘일품’

요즘 미투 운동으로 폭로된 많은 성폭력 가해자들은 그것 또한 낭만이고 사랑이라고 변명하고는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은 생각조차 않은 채.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예술인 또한 자신의 사랑은 숭고한 예술의 일부라 생각했다고 한다. 또한 그 숭고한 예술을 타인에게 강요했고 거기에 더해 양심의 가책에서도 벗어났다.

연극 미저리를 보면 일방적 사랑이 어떻게 타인을 괴롭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폴을 때리고 겁박하고 감금하는 애니. 그는 폴에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애니는 폴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을 뿐이다.

예술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무언가 확고한 옳음을 타인에 강요하는 예술은 그 순간 폭력으로 바뀐다. 순수문학을 쓰려 했던 폴을 협박해 대중소설을 다시 쓰도록 강요한 애니처럼. 자신만의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일 수 없으며, 어떤 가치도 인권보다 선행할 수 없다는 믿음이 뿌리내려야 하는 때다.

[김규식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dorabon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9호 (2018.03.14~2018.03.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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