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0 (목)

[오후 한 詩]잠 너머의 국경 2/유정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바싹 햇볕에 구워진 서우라하가

멋대로 입다 돌려준

바람의 옷을 껴입고

한 번씩

돌아누우면 다른 꿈이 돋아났다

그러면 나는 어린 나무가 되어

어깨를 기울여 들어가 보는 당신의 잠

새알처럼 동그란 눈으로

검은 하늘에 풀어놓은 바람의 지문을

받아 적는다

한 페이지를 읽으면

한 개씩 손금이 생겨났다

속살을 밀고 일어서면

새살이 돋아나는 하루가 즐거워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친다

발밑 저수지 물관을 돌아 나가고

내게는 한 뼘 발목이 가득 들어찬다

■시인이 지면에 밝힌 바에 따르자면 '서우라하(Sauraha)'는 '네팔 중부 지역에 있는 관광지'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시는 '네팔의 바람과 나무와 새알과 하늘'에 얹혀 있는 셈이다. 그렇긴 한데 '서우라하'는 차라리 강원도의 어느 계곡이나 여느 도시에 다소곳이 깃들어 있는 동네 이름만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이 봄이라서 그렇다. 다만 이 시를 읽고 있는 지금이 봄이라서, 시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속살을 밀고 일어서"는 새싹들을 기웃거리는 "하루가 즐거워" 나도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치고 싶다. 괜히가 아니라 꼭 그러고 싶다. 봄비가 내리면 "어린 나무"처럼 내 발목에도 "한 뼘" 가득 '물관이 돌아 나갈' 것만 같아서 말이다. 채상우 시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