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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People] 보유 작품 가치만 4조원 ‘세계 3대 컬렉터’ 파에즈 바라캇 | 150년 가업 모토는 ‘고대 유물의 수호자’ ‘아내의 나라’ 한국에 ‘바라캇서울’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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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청동 초입, 국제갤러리 옆을 지나다 보면 19세기 프랑스 귀족들의 정원에서나 봤음직한 하얀 대리석 조각상들이 무심하게 늘어서 있는 수수께끼 같은 공간이 나타난다. 페인트로 범벅이 된 자동차, 오토바이도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그 페인트 범벅 자동차가 세계 3대 명차이자 ‘황제의 차’로 불리는 ‘벤틀리’다. 여러모로 놀라움을 안기는 이 공간의 정체는 지난 2016년 10월 개관한 ‘바라캇서울’. 박물관급 예술 컬렉션 4만1000여점을 보유한 세계 3대 컬렉터이자 13살 때부터 남다른 천재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화가인 파에즈 바라캇(Fayez Barakat·69)의 서울 갤러리다.

런던, 아부다비, 비벌리힐스, 웨스트할리우드, 홍콩 등에 세계적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바라캇 회장이 서울을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그는 8년 전 영국에서 미술 공부를 하던 한국 여성 이화선 씨에게 한눈에 반해 만난 지 5분 만에 청혼한 낭만적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다. 디즈니 만화 주인공 ‘뮬란’을 꼭 닮은 화선 씨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다고. 덕분에 아내의 나라 한국을 자주 찾게 됐고 어느 날 부부가 함께 삼청동을 산책하다가 때마침 비어 있던 스케이프갤러리 자리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라캇서울’ 개관을 결심했다. 고궁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삼청동을 보며 “이곳이라면 내가 무언가 보여줄 수 있겠다”는 영감이 퍼뜩 떠올랐다고.

바라캇 가문은 1860년대부터 150년, 5대에 걸쳐 컬렉션을 확장해왔다. 예루살렘에서 수집한 성서 유물을 기반으로 수메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비잔틴, 이집트, 이슬람, 아프리카, 프리-콜롬비아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다. 보유 작품의 가치만 4조원을 훌쩍 넘는다.

파에즈 바라캇 회장은 그러나 스스로를 ‘고대 유물의 수호자(Temporary Guardian)’라고 칭했다. 전쟁과 약탈, 혼돈 속에서 고대 유물을 지키고 후세대와 나누는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좋은 예술작품을 보면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연결된 듯한 기운을 느낀다”는 바라캇 회장. 컬렉션 원칙은 “미학적 탁월성, 역사적 상징성, 좋은 보관 상태 등을 따지지만 기본적으로 작품과 사랑에 빠지면 앞뒤 안 가리고 사게 된다”고 털어놨다.

매경이코노미

Q 처음 가문에서 컬렉션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1860년대 초반, 예루살렘 근처 헤브론(Hebron)에서 포도원 농사를 하던 저의 증조할아버지께서 밭을 갈다가 다윗 시대의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이 유물들 중 일부는 순례자한테 팔거나 예루살렘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또 일부는 간직하기도 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1864년 예루살렘에 최초의 바라캇갤러리를 열게 됩니다. 150년에 이르는 고대 예술품에 대한 집념과 열정, 헌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83년부터 로스앤젤레스의 비벌리힐스와 런던, 홍콩, 아부다비,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에 갤러리를 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질, 아름다움, 희귀성을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바라캇 컬렉션을 되도록 많은 분들이 보고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Q 바라캇 컬렉션은 4만1000점 이상의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요.

A 이집트,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등 고대 중동 지방 유물들부터 그리스, 로마, 비잔틴 예술품들이 다수를 이루지만 피카소에게 예술적 영감을 줬던 서아프리카 여러 부족들의 조각작품들, 메소아메리카의 올멕 문명,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 등 중남미 유물, 인도와 버마 등지의 불교 미술품까지 망라합니다. 중국 유물도 약 1500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 밖에서는 가장 많은 유물을 갖고 있습니다(옆에 있던 부인 이화선 대표가 “지금도 정말 못 말릴 정도로 거의 강박적으로 수집한다”고 귀띔했다).

Q 가업이라고는 하지만 고대 예술품에 이끌리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A 어렸을 때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서 흙바닥에서 발버둥을 친 적이 있어요. 발버둥 치다 흙 속에서 오래된 동전을 하나 발견했는데 학교 선생님 말씀이 1700년 전 로마시대 동전이라는 거예요. 그때부터 고대 유물에 흥미를 갖게 됐고 16살 때부터 아버지 사업에 합류했습니다. 단순히 고대 유물을 수집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캐슬린 케니언을 쫓아 발굴 현장을 다니며 유물을 발견하고 분류하는 등 고고학에 심취했습니다. 수많은 고고학 전문 잡지나 연구, 발굴 보고서를 보고 발굴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고고학 지식을 쌓다 보니 유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감식할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키워졌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처음 저를 고대 유물의 세계로 인도했던 로마시대 동전의 경우 그 후에 로마 역사를 공부하면서 모든 황제들의 동전을 브론즈, 실버 가릴 것 없이 다 수집했습니다. 30대 중반에 이미 3만3000점 이상의 동전을 모았을 정도였죠. 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한 컬렉터가 동전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일부 넘기기는 했습니다만.

Q 피카소(Pablo Picasso)와의 인연이 컬렉션 확대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요.

A 피카소를 만나기 전 저의 수집품은 예루살렘 성경 유물과 이집트, 로마시대 유물 위주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바라캇갤러리를 방문한 피카소가 유물들을 다 둘러보더니 아프리칸 예술품들의 원시적인 생명력과 에너지를 강조하면서 왜 그런 작품은 없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아프리카 예술을 연구·수집하며 아프리카 특유의 신화와 전통, 분위기에 매료됐어요. 아프리카 다음에는 이슬람, 중국, 인도, 아시아, 남미, 프리-콜롬비아 등으로 확장했고요.

Q 컬렉션을 할 때 자신만의 원칙이나 철학 같은 것이 있다면요.

A 우선 미학적으로 탁월해야 합니다. 미적 감각(Taste of Beauty)을 충족시키는 충만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다음으로 역사적 상징성, 시대적 대표성이 있으면 유물의 가치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물의 보존 상태가 좋으면 당연히 더 좋습니다. 고대 예술작품은 작품마다 고유의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을 그냥 눈으로만 보라고 하지 않고 되도록 만져보라고 권유합니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 등 오감으로 느낄 때 유물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컬렉터에게 제일 중요한 자질은 열정입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아이템을 봤을 때 깊게 깊게 파고들어서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Q 이번에 파에즈 바라캇 개인전에 출품된 ‘화가’ 바라캇의 그림들도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A 13살 때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잭슨 폴록 작품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런 사람 모른다”고 했는데 내 그림을 무려 1만달러에 사간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텍사스 휴스턴의 유명한 컬렉터였습니다. 저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고대 예술품 사업가로서 수만 점의 예술품을 다루며 얻은 본능에 가까운 미적 감각을 갖고 있다고 할까요. 명상 상태에서 느끼는 순수한 감정과 즐거운 상상을 다양한 색채와 기법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솔직히 그림은 두 살 때부터 수백 점 이상을 그렸지만 대중에게 공개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외부의 힘이 나를 통해 그림을 그리도록 만든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의 그림은 깊은 명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에너지의 장’에 몰입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보는 이들도 이 에너지의 힘에 이끌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바라캇서울’이 멋진 고대 유물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뿐 아니라 고대 유물과 현대미술의 상호 교감을 통해 인류의 보편성·동질성을 체감하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대담 = 채경옥 주간부국장 chae@mk.co.kr / 사진 : 최영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9호 (2018.03.14~2018.03.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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