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9 (수)

[매경이코노미 ‘비즈니스 레스토랑’ 가이드] (10) 가가 | 따뜻한 집밥 느낌 물씬 ‘원테이블 레스토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은 골목골목마다 한국의 정취가 묻어나오는 곳이다. 길 건너 인사동의 북적거림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히 독특한 매력의 한식당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국역 3번 출구를 나와 북촌 한옥마을 방향으로 50여m만 걸어 올라가면 발견할 수 있는 ‘가가’도 그중 하나다. 사실 가가는 그리 친절한 식당은 아니다. 골목 안쪽에 자리 잡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도 불구하고 흔한 안내표지판 하나 없다. 식당 이용은 100% 사전예약제다. 예약이 없는 날은 아예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무작정 찾아갔다가는 헛걸음을 하게 된다.

정해진 메뉴도 없다. 인원과 비용을 말하면 그에 맞춰 코스가 준비된다. 세부적인 메뉴는 그날그날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콧대가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통상 여러 직원들로 운영되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달리 가가는 최정숙 오너 셰프 혼자 주방을 책임진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 딱 한 테이블씩만 예약을 받는다. 조용하고 오붓한 식사를 원하거나 중요한 손님을 접대해야 할 때 안성맞춤이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가는 100년이 넘은 한옥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길을 잡아끈다. 한옥의 외부 기와와 내부 천장은 그대로 살려 정취를 더했고 내부 벽면은 검은 한지를 바른 뒤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란히 배열해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현원명의 작품으로 수저의 색다른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가가는 한자어로 ‘假家’, 임시로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옛날 궁중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있을 때마다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임시로 가가를 짓고 연회 주방을 설치했다. 최정숙 대표는 “궁중 잔치 음식을 준비하던 가가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코스는 디저트를 포함해 총 7~10가지의 음식으로 구성된다. 여느 식당처럼 정해진 메뉴는 없지만 대체로 식전음식을 시작으로 차가운 전채-더운 전채-메인-밥과 찬-디저트로 이어진다. 재료는 당일 아침 직접 장을 본 제철 해산물이나 육류를 이용한다. 매번 코스 구성이 바뀌다 보니 갈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동치미 소스를 곁들인 석화로 코스가 시작된다. 손바닥 반만 한 크기의 석화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굵은 씨알의 석화를 입에 넣자마자 신선한 바다 풍미가 확 퍼진다. 신선한 굴의 탱글한 식감이 일품. 석화 위에는 무, 유자, 배로 만든 냉채가 올려지고 동치미 국물을 얼려 만든 소스가 곁들여 나오는데 제철을 맞은 굴과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음악으로 치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같다고 할까. 시작부터 강렬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차가운 전채는 육회다. 해산물에 이어 육류로 균형을 맞췄다. 신선한 소고기가 들어올 때만 내는 요리인데 운 좋게 맛볼 수 있었다. ‘simple is best(단순한 것이 최고다)’라 했던가. 별다른 기교 없이 신선한 꾸리살 또는 홍두깨살 위에 참기름과 날계란을 살짝 풀어냈을 뿐인데 차가운 소고기가 혀에 착착 감긴다. 부드러운 육질과 씹을수록 배어나는 고소함은 육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더운 전채. 표고버섯과 낙지를 이용한 버섯낙지탕수가 푸짐하게 나온다. 맛은 머릿속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버섯의 탱글한 식감과 낙지의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에 색다른 재미를 준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상큼한 탕수 소스는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든다. 다음 요리는 세 가지 모듬전. 소고기 허파전과 해산물 매생이전, 그리고 봄을 여는 채소로 알려진 봄동전이 각각의 매력을 뽐낸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전을 하나씩 집어먹다 보면 산과 바다, 들의 향기가 코끝에 맴도는 것 같다. 막걸리 한잔이 절로 떠오르는 맛이다.

이제 메인 요리 차례다. 최정숙 셰프가 좋아하는 요리 중 하나인 아강족을 이용한 돼지 족발이 준비된다. 돼지 다리의 발톱 끝부분을 가리키는 아강족은 가성비가 좋은 식재료는 아니다. 다리 윗부분과 비교해 살이 별로 안 붙어 있어 먹을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쫄깃쫄깃한 식감은 다른 부위가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압권이다. 가가의 아강 족발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뛰어난 식감과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 하루 종일 삶아도 기름이 거의 안 나올 정도로 기름기가 적다는 것도 아강족의 장점. 족발은 먹을 때뿐 아니라 요리에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다. 하루 저녁 꼬박 핏물을 뺀 뒤 소스가 제대로 배게 하기 위해서는 손질과 양념에만 8시간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결과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족발이 탄생한다. 쫀득한 족발살과 오랜 시간 스며 밴 진한 풍미는 자꾸만 손이 가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

이어 부추와 무를 넣은 굴밥으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돌솥에 지은 굴밥도 맛있지만 직접 담근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이 기가 막힌다. 이미 적잖이 배가 부른 상태임에도 잘 익은 굴밥에 양념장을 착착 비벼 먹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숟가락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가가에서의 한 끼는 격식을 갖춘 파인다이닝이라기보다 마치 아늑한 고향집에서 먹는 집밥을 연상케 한다. 실제 최정숙 셰프가 식당을 운영하면서 세운 하나의 원칙도 ‘어머니의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하자’는 것이다.

“손님의 취향을 일일이 고려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에요. 사실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죠. 하지만 음식이 남아서 혹은 손님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식당을 하게 된 목적이 음식을 차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는 데 있기 때문에 손님이 조금이라도 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나 홀로 주방’ 지키는 최정숙 셰프는 누구?

주부에서 오너 셰프로…개성 집안 출신의 손맛 일품

매경이코노미

지난 2012년 문을 연 가가는 그 흔한 블로그 홍보 한 번 없이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님의 대부분은 지인의 추천이나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원테이블’ 운영을 하다 보니 재계 인사들이 사적인 모임을 가질 때 즐겨 찾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입맛이 까다로운 유명인사들을 단골로 만든 힘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최정숙 셰프의 ‘손맛’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녀는 어린 시절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성 출신 집안에서 자랐다. 가가를 운영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식문화를 중시하는 가풍 속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요리를 몸으로 익혔다.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개성 음식 레시피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때때로 어복쟁반 등 전통 이북 음식이나 개성 음식을 재해석한 요리를 코스에 종종 선보이기도 한다.

손님에 대한 배려도 감동을 준다. 맞춤형 식단을 내다 보니 가가는 한국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손님도 적잖은 편이다. 사전 조율을 통해 거부감을 느낄 만한 요리를 제외할 수 있어서다. 외국인 손님의 경우 일부러 통역이 되는 직원을 일일 고용할 정도로 더욱 신경을 쓴다. 가가에서의 식사 한 끼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요리 하나로 유명한 식당이 아니라 무엇을 먹을지 기대되는 식당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8호 (2018.03.07~2018.03.13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