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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고재윤의 ‘스토리가 있는 와인’]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위대한 여성(바브 니콜 퐁사르당)이 만든 ‘샴페인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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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면 대학가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입학한 신입생들의 밝은 기운이 넘실댄다. 교정에는 노란 개나리가 봄이 오는 소리를 알린다. 입학을 축하하기 위한 와인으로는 황금색 라벨로 희망과 풍요로움을 전해주는 샴페인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Veuve Clicquot Ponsardin)을 추천한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다. 돔페리뇽이 ‘샴페인의 아버지’라면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은 ‘샴페인의 어머니’다.

뵈브 클리코 와이너리는 1772년 필립 클리코-뮈롱(Philippe Clicquot-Muiron)이 설립했다. 1775년 레드와인을 블렌딩해 로제 샴페인을 최초로 양조, 유럽의 왕족과 귀족, 부유한 상인들이 즐겨 마시는 샴페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더욱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남편 프랑수아 클리코(Francois Clicquot)가 장티푸스로 사망한 후 1805년 바브 니콜 퐁사르당(Barbe-Nicole Ponsardin)이 27세 나이에 여성 최초로 은행, 섬유, 와인 사업을 물려받으면서다. 그는 샴페인에 새로운 양조 기법을 도입했다. 효모 찌꺼기를 효율적으로 모을 수 있는 도구(Pupitre)를 이용해 병목 주변으로 효모를 모으는 방법(Remuage), 그리고 병 속의 효모 찌꺼기를 제거하는 방법(Degorgement)을 개발해 샴페인의 품질과 제조 효율성을 개선했다.

바브 니콜 퐁사르당은 프랑스 샹파뉴의 도시인 랭스에서 섬유 제조업체 경영인이자 정치가였던 부친 퐁스 진 니콜라스 필립 퐁사르당(Ponce Jean Nicolas Philippe Ponsardin)의 사랑을 받으면서 부유하게 자랐다. 당시 그녀의 부친은 나폴레옹과의 친분 덕분에 샹파뉴 랭스 시장으로 활동했고 나폴레옹과 조세핀은 그의 호텔에 자주 투숙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은 물론 프랑스 상품의 수입을 금지했던 러시아까지 샴페인 판매권을 획득했다.

매경이코노미

▶샴페인 찌꺼기 제거법 개발한 최초 여성 와인 사업가 퐁사르당

1818년 완벽한 로제 샴페인을 양조하는 방법을 개발했지만 라벨이 아직 없는 게 문제였다. 대신 코르크를 보고 구별했지만 당시에는 전깃불이 없어 밤에는 촛불을 사용하다 보니 샴페인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뵈브 클리코는 밤에도 촛불로 식별하기 쉽도록 노란색 라벨을 사용했고, 이게 뵈브 클리코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가 됐다. 그는 노란색 라벨을 특허 등록해 차별화를 시도했고,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부터 영국 황실의 인증서까지 받아냈다.

1866년 바브 니콜 퐁사르당이 사망한 후 그녀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샴페인 이름을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으로 짓게 된다. 1972년에는 와이너리 창립 200주년을 맞아 ‘라 그랑 담(La Grande Dame·위대한 여성)’을 출시, 샴페인의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2008년 7월에는 스코틀랜드 아일 오브 맨의 토로세이성(Torosay Castle)에서 1893년 생산된 뵈브 클리코의 미개봉된 샴페인이 발견됐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와인으로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987년에 뵈브 클리코 샴페인은 LVMH그룹에 인수돼 명품 브랜드 중 하나로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필자는 지난 2015년 뵈브 클리코를 방문해 다양한 샴페인을 시음했다. 그중에서도 ‘뵈브 클리코 퐁사르당 2004’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피노누아 62%, 샤르도네 30%, 피노 뫼니에 8%로 블렌딩한 와인이다. 매력적인 황금색에 미세한 기포, 잘 익은 시트러스, 청매실, 이스트, 사과, 배의 향이 독특하며 부드럽고 짜릿한 탄산가스와 함께 잘 익은 과일의 풍미, 무겁지 않고 적절한 산도가 훌륭했다.

음식과의 조화는 캐비아, 명란, 생선초밥, 오드블 등과 잘 어울린다. 가격은 빈티지별로 다르지만 대체로 8만원 안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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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윤 경희대 외식경영학과 교수 겸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8호 (2018.03.07~2018.03.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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