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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로또면 뭐하나 청약도 못하는데"…부자 놀이터로 변질된 청약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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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시장이 돈 많은 자산가만을 위한 놀이터로 변질됐어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사실상 분양가 통제로 주변 시세보다 수억씩 싼 ‘로또 아파트’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보유 현금이 충분한 자산가들에게만 청약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도금 대출이 막혀있고 건설사 자체 보증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목돈이 없는 실수요자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8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자이 개포’ 시공사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건설사 자체 보증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이 단지는 중도금 60% 중 40%를 자체 보증으로 조달할 계획이었다.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가장 작은 주택형인 전용 63㎡ 저층이라도 9억원이 넘기 때문에 은행권을 통한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는다.

조선비즈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8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자이 개포’ 완공 후 예상 모습. /현대건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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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잔금 대출을 제외하더라도 계약금 10%와 중도금 60% 모두를 자력으로 조달해야 해, 현금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청약 기회가 사실상 주어지지 않는 셈이 된다. 올해 하반기부터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로 대출 한도를 정하게 돼 무리하게 신용대출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이 단지 분양가는 3.3㎡당 4160만원으로 책정돼, 주변 시세보다 낮은 편이다. HUG의 분양보증 승인 문턱(3.3㎡당 4243만원)도 이미 낮은 편이었는데 그보다도 가격을 더 낮췄다. 개포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인근 ‘래미안 블레스티지’ 전용면적 84.94㎡ 분양권(34층)은 18억208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약 5300만원 수준이다.

같은 면적으로 치면 4억원 정도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상황인데, 청약 장벽이 크게 높아지게 되면서 돈 많은 부자들이나 노려볼 수 있게 됐다. 미계약·부적격 물량이 발생할 경우 이를 재분양할 때는 별도의 제한이 없어 유주택자나 1순위 조건이 아닌 사람들도 당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에이치자이 개포는 이를 감안해 예비당첨자 비율을 80%로 높이기로 했지만,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앞서 HUG의 분양가 통제로 인해 ‘로또 아파트’로 꼽혔던 신규 분양 단지들에서 미계약·부적격자가 속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분양을 진행한 ‘과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써밋’(과천주공 7-1단지 재건축)의 경우 일반분양 물량 575가구 중 22%에 달하는 128가구가 미계약·부적격 물량으로 나왔다. 예비당첨자 비율을 40%로 높였지만, 여기에서 소화된 물량은 거의 없었다.

이 단지의 분양가는 3.3㎡당 평균 2955만원으로, 과천 최고 분양가를 기록하긴 했지만 주변 시세보다 3.3㎡당 약 200만원 저렴하다. 그러나 전용 84㎡ 이상 주택형 분양가가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 보증이 제한된다. 지난해 9월과 10월 각각 서울에서 분양한 ‘래미안 강남 포레스트’(개포시영 재건축)나 ‘서초 센트럴 아이파크’도 시세 대비 분양가가 낮았지만, 잔여분이 적지 않게 나왔다.

결국 강남권 등 입지가 좋고 시세보다 저렴하기도 한 새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에게만 돌아갈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 팀장은 “소득이 많아 대출 상환 능력이 있는 경우에도 당장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없으면 청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자산이 많은 사람만 시세차익을 보는 구조가 되고 있는 만큼, 제도 맹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salm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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