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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다시 주목받는 ‘1992·2005년 비핵화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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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조건·방안 등 논란에 전문가들 “과거 합의된 사항…복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 일각 “바로 통 큰 합의할 수도”

남북,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로 한반도 정세에 대격변이 시작되면서 비핵화 논의의 선례로 꼽히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비핵화 조건·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10일 대북 특별사절단의 방북·방미 결과를 설명하면서 “비핵화는 92년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있다. 다른 비핵화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정원식 국무총리(왼쪽)과 연형묵 북한 총리가 1992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제6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을 담은 통지문을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1991년 노태우 정권의 비핵화 선언 이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만들어진 총 6개항의 공동선언 핵심은 1∼4항인데 △핵무기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치설비·사용 금지 △핵에너지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 △우라늄농축시설 보유 금지 △상호 합의 사찰 실시로 요약된다.

비핵화 공동선언이 대의명분만 앞세운 ‘구두선(口頭禪)’에 가깝다면 이후 13년 만에 나온 9·19 공동성명은 1, 2차 북핵위기를 겪은 후 국제사회가 지루한 협상을 거쳐 도출한 한반도 비핵화의 설계도라는 평가다. 가장 큰 성과는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핵확산금지 조약), IAEA(국제원자력기구)로 복귀한다는 북한의 약속이다. 그 대가로는 한반도 평화협상 개시, 미국의 북한 불침 및 북·미 간 신뢰 구축,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등이 합의됐다.

공동성명의 액션플랜은 4년여 만인 2007년 2월 13일에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 즉 2·13합의로 이어졌다. 2·13합의 핵심 가치는 ‘원자로 불능조치=경유 지원’식의 비핵화를 위한 북한 행동에 따라 다른 나라 지원이 결정되는 구체적 이행계획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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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중국 베이징에서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손을 모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 후 10여년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시작된 비핵화 논의는 이 같은 공동선언·성명·합의로 복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특사단의 러·중·일 방문 이후) 6자회담으로 가면 2005년 9·19 공동성명 구도로 돌아가야 된다는 얘기가 되고, 그렇게 되면 이미 합의된 걸 이행만 하면 되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비핵화 내지는 평화협정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없는 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쓰겠다고 도로를 닦아놓고 그동안 쓰지 않았던 길을 다시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전례없는 파격적 행보가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단계적 접근은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비접촉·탐색대화는 물론 실무협의도 건너뛰고 이뤄졌듯 이번 비핵화 논의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에 의한 단계별 교환이 아니라 단번에 통 큰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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