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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노트북을 열며] 당신은 왜 검사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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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2007년 11월 1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4층 검찰역사관에 흉상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일제의 침탈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고종 황제의 밀지를 받고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됐던 이준(1859~1907년) 열사상이다.

그는 ‘검사 1호’로 칭해졌다. 최초의 근대적 법률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가 배출한 첫 세대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단 그의 의기를 본받자는 뜻이 컸다. 1906년 검사에 임용된 이준 열사는 토지를 강탈한 왕족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파헤치다 임명 33일 만에 파면당했다.

고종은 이런 이준 열사의 정의감을 높이 사 그를 헤이그 특사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 결기로 인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외롭게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 검사가 본받아야 할 상징이 됐다.

111년이 지난 현재, 검찰은 전례 없는 칼날을 내부로 들이대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미투’ 폭로를 시작으로 동료 검사에 대한 성폭행·성추행 혐의로 구속되는 현직 검사가 나왔고, 앞으로 몇 명이 수사를 더 받게 될지 예상 못하는 상황이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외압과 관련해서도 다수의 전·현직 검사가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특히 2015년 최인호 변호사에게 수사 기록이 유출된 사건과 관련해 대대적 내부 사정작업에 돌입했다.

하나하나의 수사가 그야말로 검찰의 명운을 걸어야만 하는 메가톤급이다. 올해를 검찰 개혁의 원년으로 선포한 정치권은 물론 그렇지 않아도 진경준 전 검사장 등 계속되는 검찰 비리를 목격해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검찰 내부에서는 각 수사에 참여하는 이들이나 그 대상이 되는 검사들 주변 모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의혹이 불거졌는데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검찰의 미래는 없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동료를 죽여서라도 자신의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며 연판장이라도 돌릴 분위기다. 자칫 검찰 내부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의 명운을 걸었다는 검사들은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거나 향후를 도모하겠다는 사심을 경계하고, 너무하다는 이들은 감정이 아닌 팩트에 근거한 비판과 저항을 하면 된다.

하여 검찰총장부터 새내기 검사에 이르기까지 2000명이 넘는 대한민국 검사 한 명 한 명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검사가 되셨습니까.”

이준 검사의 정신을 더는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문병주 사회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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