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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서승욱의 나우 인 재팬] 쓰나미에 84명 잃은 학교 폐교 … 7년째 안오는 ‘도호쿠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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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끝나지 않은 비극

중앙일보

2011년 3월 11일 쓰나미 피해를 당하기 전 오카와 초등학교 교정의 모습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시 가마야 야마네 (釜谷山根) 1번지. 오카와(大川) 초등학교의 주소다.

이시노마키 역앞에서 빌린 렌트카 네비게이션에 학교 이름 대신 주소를 찍었다. 학생들이 뛰어노는 학교는 이미 그 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오후 30분을 달려 도착한 학교 터엔 학생들 대신 쓰나미가 할퀸 건물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건물사이를 잇는 회랑은 무너져 내린 채였고, 창 유리도 모두 깨졌다.

7년전 쓰나미가 몰려왔다는 학교 옆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에, 이 곳은 주변의 어느 곳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건물 입구에 마련된 간이 추도시설엔 동일본 대지진 7주년을 앞두고 학교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도 자신을 여행객으로,또는 지역주민으로 소개한 이들이 특파원에게 “재해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는 슬픔의 땅”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대부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011년 3월 11일 전체 재학생 108명중 74명, 교직원 10명까지 합치면 모두 84명이 쓰나미의 희생양이 된 이 곳은 ‘도호쿠(東北) 비극’의 상징적인 장소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교정 바로 옆 뒷산으로 대피하려다 “나무가 넘어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때문에 200m 이상 떨어져 있는 피난소로 이동하다 변을 당했다. 당시 줄을 지어 함께 이동하던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당시 5학년 다다노 테츠야(只野哲也·18)등 살아남은 이들은 오카와의 비극과 교훈을 세상에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을 맡고 있다.

원전 주변 학생수 사고 전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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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피해 직후의 모습. 쓰나미로 학생과 교직원 84명이 희생됐다.


어쩌면 당시 학생들을 구할 수도 있었던 교정 옆 뒷산은 아직도 눈 앞에 선명했다. 사망한 학생 23명의 유족은 대피 과정에서 학교측의 과실이 있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6년 10월 센다이 지방법원은 학교측의 과실을 인정하고 14억엔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교정 군데 군데 설치된 판넬들 속 사진들은 당시 비극을 선명히 전했다.

특히 쓰나미 피해를 입기 전과 피해를 당한 뒤의 모습은 극한 대조를 이뤘다.

3·11 이후 살아남은 학생들이 주변 지역의 가설 건물을 전전하며 학교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결국 다른 학교와의 통합이 결정됐다.

구 교정은 철거되지 않고 ‘재해의 교훈’으로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오카와 초등학교’라는 이름은 지난달 24일 폐교식과 함께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도호쿠의 상처는 짧지 않은 7년의 세월에도 아직 깊게 남아있다.

삶의 터전을 잃고 도호쿠를 떠난 이들이 과거의 보금자리로 돌아올 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해공영주택(부흥주택)문제다. 쓰나미에 의해 보금자리가 짓밟힌 이들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어 공급하는 주택이다.

아사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원래는 도호쿠 지방 3개현(후쿠시마·미야기·이와테)의 경우 자력으로 주택을 다시 세울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부흥주택이 2015년까지 모두 완성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2018년로 늦춰졌다. 내년이나 내후년이 돼야 건설되는 곳도 있다.

일손 부족과 높은 자재비, 고지대 용지 확보와 택지 조성의 어려움때문이었다.

주택 확보가 늦어지면 피해자들의 가설 주택 생활은 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일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더 요원해진다.

피난 해제지역도 방사능 수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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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와초등학교 입구 쪽에 마련된 간이 추도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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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사정은 더 심각하다. 오카와 초등학교 처럼 ‘학생 없는 학교’,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학교’가 속출할 수 밖에 없다.

3개 현중 원전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후쿠시마(福島)현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피난 지시 해제로 4월부터 학교 수업이 재개되는 원전 주변 4개 마을은 취학대상자들의 4%만 관내 학교를 다닐 예정으로 파악됐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했다.

피난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학교나 직장 등의 생활 기반을 외부에 새롭게 만든 사람들이 과거의 거주지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원전 주변 지역중 수업이 이미 재개됐거나 재개될 예정인 9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요미우리 신문 조사에서도 초·중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원전사고 이전의 8.6%에 불과했다.

방사능 공포의 영향도 무시 못한다.

최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浪江町)와 이타테(飯館)마을의 방사능 오염 실태 보고서를 보면 피난 지시가 해제된 구역의 방사선 수치도 일본 정부의 장기 목표치인 시간당 0.23 마이크로시버트(μSv)를 훨씬 초과했다.

아사히 신문과 후쿠시마 방송이 후쿠시마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방사성 물질이 자신과 가족들에 미칠 영향때문에 불안을 느낀다”는 답변이 66%로, 불안하지 않다(33%)의 두 배였다. 2011년이후 매년 줄던 수치가 오히려 작년(63%)보다 높아진 것이다.

원전 오염수 방류 추진, 주민들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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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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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정도의 세월이 흘러야 이전과 같은 생활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20년보다 길 것”이란 답변이 54%로 가장 많았고, “20년 정도”라는 답변이 19%였다.

원전 부지내 오염수 문제도 진전이 없다. 오염수 바다 방출 계획은 제자리를 맴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에 따르면 현재 탱크에 보관중인 오염수는 도쿄돔 0.8배인 100만t, 향후 3년이 채 안돼 탱크 증설용 부지가 없어지면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가장 간단한 방안은 방사성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정화해 바다로 내보내는 것이지만, 어민단체 등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막혀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후쿠시마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이웃나라들의 양해까지 필요한 사항으로, 국제적으로도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베노믹스로 흥청대는 일본,상처 받은 도호쿠는 외딴 섬처럼 느껴진다.

서승욱 이시노마키(미야기현)=도쿄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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