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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사이다 뮤지컬 `레드북` 미투 열풍 타고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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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레드북' 미투 열풍 타고 돌풍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 야한 소설 쓰는 안나의 좌충우돌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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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12] 배경은 신사의 나라 영국, 그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안나는 우연히 만난 신사 브라운의 응원 아닌 응원에 힘입어 글을 쓰게 된다. 여성은 글을 쓸 수 없었던 시절, 자신의 사랑과 쾌락을 진솔하게 고백한 그녀의 글이 실린 '레드북'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만 동시에 사회적 비난과 법적 처벌에 직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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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드북'의 인기가 엄청나다. 인터파크 공연 예매 순위 5위에 올랐다. 레드북이 중극장 뮤지컬인 데 반해 앞선 4개의 뮤지컬이 대형 뮤지컬인 점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순위다. 창작 뮤지컬 중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자, 이 흥행 돌풍은 보고나면 납득이 간다. 귀에 쏙쏙 박히는 노래, 아기자기한 무대, 거기에 이야기는 사랑스럽고, 통쾌하고 또 정의롭기까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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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은 사랑스럽다. 일단 주인공 안나는 관객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완벽한 '여자 주인공'이다. 예쁘다거나, 능력이 특출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 뮤지컬 여주인공은 하나같이 판에 박힌 듯 똑같았다. 공주거나 왕비거나 혹은 비운의 여주인공으로 구원자(남자)의 도움 혹은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였다.

안나의 삶도 물론 기구하다. 약혼자에게 차였다('현모양처'가 이상적인 여성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때 여성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날 안나는 자연스럽게 약혼자에게 자신의 옛 애인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약혼자의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며 파혼을 통보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신데렐라처럼 자신의 새로운 구원자(남자)를 찾지 않는다. 대신 구직에 나선다. "여자 혼자 어떻게 사느냐"는 주변의 질문에는 "이것 보세요. 지금 저 혼자서도 잘 살고 있는데요"라고 대꾸한다. 신사 브라운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은 그녀의 삶의 한 부분일 뿐 전부는 아니다. 브라운이 아무리 싫어해도, 아무리 뜯어말려도 그녀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랑에 목숨 걸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전형적인 여주인공이 아니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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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사랑스럽다. 너무 자유분방해서 사람들에게 돌 맞아 죽은 자신의 옛 친구 로렐라이를 추억하며 여성문학회를 꾸린 뒤 남장여자로 살아가는 로렐라이는 약방의 감초다. 때로는 강인한 남성으로 못된 남성들을 제압하고, 때로는 우아한 여성으로 남편과 사회에 버림받은 '로렐라이 문학회'의 회원들을 감싸안는다. '신사 중의 신사'를 자처하는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편견과 '남성'으로서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브라운이 안나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잘못을 마지못해 인정하며 성장하는 모습에는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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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레드북은 '통쾌하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단다. 여자가 설쳐대니 나라 꼴이 어지럽단다. 열심히 일을 구하는 여성에게 돌아오는 한마디. "그러니까 아직 결혼 못했지!" 무대에서 과장된 여성에 대한 편견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주인공 안나는 이런 편견에 지지 않는다. 사타구니를 확 걷어 차버리거나, 못된 입은 통쾌한 논리로 '닥치게' 만들어 버린다. 속이 뻥 뚫린다.

무엇보다 "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라고 노래하는 안나의 발칙함에는 웃지 않고 못 배긴다. 압권은 '사마귀 성교' 장면을 묘사할 때다. 소설 묘사 수업에 쓸 암수 사마귀를 잃어버린 도로시를 돕기 위해 안나는 사람들 앞에서 사마귀의 성교 장면을 재현한다. "찌르르르르~" 안나가 내는 절정에 달한 사마귀 울음소리에 엄숙한 중년 남성도 엉덩이를 들썩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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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북은 '옳다'. 빅토리아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 역시 모두가 '성'을 즐기면서 즐기지 않는 '척'한다.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여자에게는 반드시 '헤프다'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레드북은 모두가 당당하게 성을 즐기자고 말한다. 안나가 연재하는 소설의 주제가 바로 '사랑', 즉 성이다.

무엇보다 레드북은 올바른 '페미니즘'을 말한다. 안나는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라고, "그걸로 괜찮다"고 노래한다. 페미니즘이 여성과 남성을 대립을 조장하는 개념이 아닌 그저 모두가 당당하게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운동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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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보고 나오는데 뒷맛이 썼다. 평론가 딕 존슨은 안나에게 평론을 써줄 테니 자신과 자자고 말한다. 가게 주인은 안나가 여자지만 힘이든 몸이든 다 쓸 줄 안다니 '어떻게 쓸 줄 아냐'며 음흉하게 웃어온다. 거기에 브라운은 피해자 안나에게 야한 소설을 쓰니 성추행을 당하는 거라는 황당한 일침을 가한다. 최근 일련의 미투 운동으로 고발된 우리가 못 본, 혹은 못 본 척 해온 현실과 너무 똑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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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투성이 세상에 오답으로 남을래."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안나'에게 이 '레드북'은 큰 위로가 돼줄 듯하다. 당신이 틀린 게 아니라고. 당당히 세상과 맞설 용기를 가지라고.

주인공 '안나'역에는 아이비와 유리아, '브라운' 역에는 박은석과 이상이, '로렐라이' 역에는 지현준과 홍우진이 열연을 펼친다. 배우들의 호연 역시 뮤지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공연은 3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김연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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