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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조선인은 ‘징용되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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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조선인 강제연행
도노무라 마사루 지음, 김철 옮김/뿌리와이파리·1만5000원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은 우리에겐 상식이랄 정도로 익숙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배경과 내용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여기엔 단순한 상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질문들이 있다. 예컨대, 일제는 왜 해방을 고작 1년 앞둔 1944년 9월에야 비로소 조선인에 대한 징용령을 발동했을까? ‘강제연행’이라는 폭력적 동원이 대부분이었긴 하지만, ‘돈 벌기 위해 스스로 자원했다’는 사례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일본 근대사 연구자 도노무라 마사루 일본 도쿄대 교수는 자신의 저작 <조선인 강제연행>에서 조선인 강제연행의 전체상을 종합적으로 그려내는 시도를 편다. 이 책은 강제연행의 폭력성 유무를 따지는 수준에서 벗어나,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가 어떤 구조로 이뤄졌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본적으로 지은이는 노무동원이나 징용 과정의 강제성이나 폭력성 논의를 떠나, 동원의 제도와 구조에서부터 차별, 심각한 ‘인권 침해’가 핵심적인 문제였다고 짚는다. 애초 조선인이 일본으로 오는 것을 꺼리고 규제했던 일제는, ‘내지’의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노무동원계획’(1939~1941)과 ‘국민동원계획’(1942~1945)이 그 기초 계획이다. 그러나 동원 계획만 내놨을 뿐, 뒷받침이 되는 규정, 제도, 체제 등이 아무것도 없었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일본인의 차별, 언어불통,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 총체적인 인권 침해 상황이 벌어졌고, 분쟁과 쟁의도 빈발했다. 기피자와 도망자가 급증했다. 일본인 대상의 노무동원도 있었지만, 조선인처럼 대우가 열악하지 않았고 동원과 관련된 여러가지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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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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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징용되지 않는 차별’도 말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국민징용령’으로 동원된 사람과 가족은 국가의 생활원조를 받고 있었다. 조선에서 1944년까지 징용령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들을 국가에 의한 명예, 생활의 원조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뜻이다.” 이미 조선인들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징용보다도 더 혹독한 노무동원에 시달리고 있었기도 했다.

지은이는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는 ‘조선인을 위해 일본인이 기억해두어야 할 역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연구의 의미 역시 “단지 조선 민족이 입은 피해의 규모를 알리고 일본인에게 가해의 역사와 진지하게 마주하라고 촉구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지은이는 “조선인 노동자를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하는 관행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함으로써 일본인 노동자의 대우도 개선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됐다”며, “소수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국가와 사회는 다수자도 억압하기 마련”이라고 일깨운다. 결국 일본인은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인 자신을 위해 제국주의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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